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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숲에 살던 거인 아빠, 도시에 와서 인형처럼 작아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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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우리 아빠, 숲의 거인
위기철 글, 이희재 그림
사계절, 104쪽
1만2000원

『아홉살 인생』『무기 팔지 마세요』의 위기철 작가가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동화다. 그의 책답게 주제의식이 뚜렷하지만 딱딱하진 않다. 능청스런 거짓말, 세련된 유머가 세태를 비꼬고 교훈을 전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깔끔하게 포장해냈다.

이야기는 주인공 아이가 자신의 엄마 아빠가 어떻게 만나 자기를 낳았는지를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쁘고 얌전한 도시 아가씨가 거칠지만 순수한 숲 속 거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한 두 사람. 신접 살림은 도시의 아파트에 차렸다. “벌레가 너무 많아요” “숲에선 아이를 키울 수 없어요” 등 98가지 이유를 대며 숲 속에서 살 수 없다고 한 엄마의 의견에 따라서다.

도시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 안간힘을 쓰는 사이, ‘거인’이었던 아빠는 하루에 한 뼘씩 줄어들기 시작한다. 마침내 보통 사람만큼 작아졌을 때 외할아버지는 “흠, 이제야 내 마음에 드는군”이라며 만족스러워했다. 그 뒤에도 아빠는 매일 줄어들고 줄어들고 또 줄어들어 결국엔 인형처럼 아주 작아져버리고 만다. “이건 아니야! 내가 사랑했던 남자는 숲의 거인이었어!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반전은 도시 생활이란 틀을 벗으면서 시작됐다. 남 하는 대로 따라 살며 ‘평범’이란 범주에 들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도시의 삶. 그 강박을 뿌리치는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책은 아빠가 다시 ‘거인’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네 모습을 지키며 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세상의 성공 기준을 좇아 사느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놓쳐버린 어른 독자들에게, 제 자식들을 학원 순례자로 만들며 ‘거인’이 될 기회조차 빼앗아버리는 부모 독자들에게 던지는 생각거리가 제법 묵직하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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