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선진·개도국 사이 교량역할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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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2월 6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개최된 노벨평화상 제정 1백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21세기를 평화의 시대로 만들자'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세계평화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20세기에는 민족주의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2백50여차례에 걸친 크고 작은 전쟁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무려 1억1천만명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인종간, 종교간, 문화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같은 갈등의 근저에는 선.후진국간의 빈부격차가 있으므로 국제사회가 나서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인류의 밝은 미래를 비추는 길임을 그는 강조하였다.

金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의 대부분이 참석한 이 세미나에서 햇볕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한반도에서 긴장이 크게 완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굴곡이 있었음을 지적했다.그리고 한반도에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일관성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임을 천명하고 이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요청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지 한 돌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화해.협력의 대북 햇볕정책을 추진해 6.15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필자는 29년 전 주 노르웨이 상주대사관을 창설한 사람으로서 평소 노벨 평화상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져왔다. 그런 만큼 감회 또한 크다.

지난 1년을 회고해 보자.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개인의 영광이다. 평생을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수호에 이바지한 공헌을 인정받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 애호국으로서의 우리나라 위상과 국제적 영향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번 노벨 평화상 1백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金대통령이 주제발표의 기회를 가지게 된 것도 그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급속한 성장으로 국내총생산(GDP)과 무역 규모면에서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이에 상응하는 국제적인 영향력 행사에는 한계가 있었다.그러나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세계 모든 나라에서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도덕심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金대통령이 이번 세미나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세계화.정보화 과정에서 더욱 약자가 되고 있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국가와 국민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햇볕정책 추진 경험을 통해 체득한 '대화와 협력'의 실천이야말로 21세기 인류공영을 보장하는 지름길임을 잊어선 안된다.

지난 9월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 참사 이후 전세계에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평화를 위협하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국가간, 문명간 대화를 게을리해선 안된다. 빈부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원인, 즉 정보화 격차를 해소하는 데 보다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교량 역할을 통해 세계적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는 우리의 외교철학과 합치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해 본다.

오재희 <前주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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