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기능성 비누' 벤처 만든 이효창씨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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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40여년간 쌓아온 비누에 대한 노하우와 열정을 '실버 벤처'에 쏟아보겠습니다."

고희(古稀.70세)를 훌쩍 넘긴 부부가 '기능성 비누'로 벤처의 성(城)에 도전하고 나섰다. 주인공은 이효창(80.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씨와 하상남(75.여)씨.

이들 부부는 ㈜세리온을 창업, 내년 초 홈페이지(http://www.hcserion.com)를 열고 본격적으로 영업에 뛰어든다. 피부미용에 좋은 최고급 제품을 선보이겠다는 각오다.

"손자 재롱이나 볼 나이에 무슨 벤처냐고요? 우린 아직 할 수 있습니다. 창업 준비에 아플 시간도 없어요. 젊은 벤처 선배들에게 한수 가르쳐주고 말겠어요."

李씨는 해방 전 한 일본 제약회사에서 주임으로 일했고, 河씨는 경성여자의전을 중퇴한 뒤 약국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이들이 미용비누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60년. 흙에서 뽑아낸 운모.적석지 등과 미량의 셀레늄을 섞은 물질이 피부미용에 좋다는 사실을 알고 미용비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하는 사업이 있었던 데다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어 참 바빴지요. 하지만 틈만 나면 재료를 구해 미용비누를 손수 만든 뒤 효능을 시험하곤 했지요."

李씨 부부는 30여년 동안 연구열을 불태우며 발명특허를 10여개 따냈다. 드디어 93년 이들은 '세리온 미용비누'를 야심작으로 내놓았다. 이 비누는 출시되자마자 날개돋친 듯 팔려 서울.부산 등 전국에 80여개의 대리점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96년 불법 수입한 미용비누들이 적발되면서 파동이 일었다. 그 여파로 비누 대리점들이 연쇄적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李씨 부부는 자금난으로 더 이상 비누를 생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좌절하지 않고 비누 연구를 계속하며 희망의 빛을 찾았다. 빚더미에 올라앉았던 이들이 부채를 거의 정리한 올 6월 기회가 찾아왔다. 중소기업체 사장인 진형조(52)씨가 함께 사업하자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서울에 사무실을, 충북 보은에 비누공장을 차리고 직원 열명을 채용했다.

李씨는 "젊은층을 공략할 수 있는 인터넷 영업전략을 펴고 중소기업청에 벤처자금도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서울과 보은을 오가며 제품 연구에서부터 제조.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꼼꼼히 챙긴다. 李씨의 결연한 모습에서 고령화 사회의 지혜를 찾을 수는 없을까.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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