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에서 탈레반 항복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전대미문의 항공기 돌진테러로 뉴욕.워싱턴에서 3천5백여명이 목숨을 잃은 다음날인 지난 9월 12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테러공격을 '21세기 첫 전쟁'으로 선포하고 미군에 전시 최고경계령인 '델타'를 발령했다.

나흘 뒤인 16일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의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하고, 그에게 피신처를 제공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게 사흘 내로 빈 라덴을 넘겨주지 않으면 전쟁에 들어가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러나 탈레반 최고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국경지대에 병력을 증강, '지하드(聖戰)'에 돌입했다. 미국은 탈레반에 우호적이던 파키스탄을 끌어들여 전쟁준비를 착착 진행시킨 뒤 테러발생 26일 만인 10월 7일 영국군과 합동으로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개시했다.

수도 카불과 칸다하르, 마자르 이 샤리프 등 탈레반 거점도시들이 불바다가 됐다.

1996년 탈레반에 의해 축출된 후 북부지대 10% 정도만을 장악한 채 버텨오던 북부동맹군 1만5천여명도 미군공습에 맞춰 독자적으로 대 탈레반 공세를 개시했다.

그러나 미군은 공습 개시 한달 동안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고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반전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혹독한 추위와 험준한 산악지형 등 천연의 무기를 활용해 탈레반이 장기전을 펼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되면서 미국인들 사이엔 '제2의 월남전'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졌다. 그러나 한달을 막 넘긴 11월 9일 돌연 대반전이 일어났다.

'오합지졸'이란 비아냥까지 들어온 북부동맹군이 미군의 맹폭에 힘입어 탈레반의 북부 거점도시 마자르 이 샤리프를 점령한 것이다.

이어 북부동맹군은 나흘 만인 13일 카불을 점령하고 25일에는 탈레반의 북부 최후 거점 쿤두즈마저 함락하는 파죽지세의 전과를 올렸다. 힘을 받은 북부동맹군은 칸다하르 공략에 나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두달째가 되는 6일 탈레반의 최종 항복을 받아냈다.

강찬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