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문인수(1945~) '오징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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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억누르고 누른 것이 마른 오징어다.

핏기 싹 가신 것이 마른 오징어다.

냅다, 불 위에 눕는 것이 마른 오징어다.

몸을 비트는, 바닥을 짚고 이는 힘.

총궐기다

하다못해 욕설이다.

잘게 씹어 삼키며

무수한 가닥으로 너를 찢어 발기지만

너는,시간의 질긴 근육이었다.

제 모든 형상기억 속으로

그는, 그의 푸른 바다로 갔다.

문인수(1945~) '오징어'

우리는 왜 고단한 내장 속으로 써늘한 맥주를 부어넣을까? 찬 맥주를 마실 때는 왜 이토록 마른 오징어가 씹고 싶어지는 것일까? 우리는 무슨 권태의 힘으로 이 '시간의 질긴 근육'을 씹고 또 씹을까?

우리는 왜 억눌린 것의 맛, 핏기 없는 것의 질긴 맛을 불만의 이빨로 찢어발기나? 그러나 문득 꿈속인 듯 아득히 그리워진다, 제 '형상기억'을 따라 푸른 바다로 간 오징어. 씹으면 씹을수록 푸르름이 깊어지는 오징어의 바다와 그 바다의 해방이 그리워진다.

김화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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