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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섬' 발리… 남국의 풍요·여유 넘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신들의 섬'발리(인도네시아). 한 번 온 자는 언젠가 또다시 오게 된다는 전설이 있다던가.

발리에 발을 디딘 것은 해거름녘이었다. 한 처녀가 묵직한 적도의 저녁 공기를 헤치며 다가선다. 꽃목걸이를 걸어준다. 발리다, 기대감이 차오른다.

짐을 풀자마자 바다를 만난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눕는다. 야자수 사이를 파고드는 바람, 해변을 기어오르는 파도, 그리고 초로(初老)의 남녀가 속삭이는 소리가 쫓아온다.

깜박 잠든 사이 밤이슬과 어둠이 함께 내려앉고 느슨해진 눈 속으로 낯선 별자리가 찾아들었다.

'못보던 별이군. 여긴 남국이지. 언젠가 오늘의 기억이 떠오른다면 어떤 느낌부터 찾아올까. 소곤거림일까, 별빛부터 맺힐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밤이 이슥해진다.

다음날 버스로 1시간여를 달려 가니 킨타마니 화산지대(해발 1천4백m)가 눈앞에 버티고 서있었다. 화산재로 뒤덮인 바투르 화산에 거대한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마치 송충이에 갉아 먹힌 잎사귀처럼.

먼발치에 있는 아궁산(3천1백m)은 수증기를 품어낸다. 현지인 가이드 포니는 "호수 근처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풍장(風葬)을 지낸다"고 했다.

시인 황동규가 풍장에 대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라고 노래했듯 이곳은 바람과 놀 만한 곳이라는 생각에 감탄이 절로 난다.

해상 사원(寺院)과 원숭이 숲을 찾았다. 계단식 논이 이어진다. 모양은 우리네와 같지만 1년 동안 세번 수확이 가능하다고 했다. 발리 사람들의 여유로워 보이는 웃음이 풍요로운 논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비약을 해봤다.

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막아섰다. 발리 고유의 장례식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잠시 후 또 다른 행렬이 스친다. 축제라고 한다. 사원마다 거대한 깃발이 날린다. 이런 게 종교(힌두교)의 힘인가, 궁금해진다. 가이드는 카스트 제도에 대해 길게 설명을 해준다.

바다에서는 형형색색의 물고기와 만날 수 있다. 애써 잡아보려 하나 잘도 빠져나간다. 쿠다 해변(3㎞)은 낮에는 서핑의 천국이다. 어둠에 묻힌 밤 비치 뒤편의 바는 서양 젊은이들로 넘친다. 가끔 만나는 동양인에게 눈 인사를 건넨다.

발리에서 돌아왔다. 산에서 바다에서 때론 방에서 뒹굴었던 며칠 동안의 짧은 기억과 생각은 문득문득 일상(日常)으로 스며들며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발리의 전설이 효험있을지, 발리를 떠난 지금 더욱 궁금하다.

◇ 여행 쪽지=인도네시아는 동남아 최대의 이슬람국가다. 그러다 보니 미국 9.11 테러사건으로 유럽 관광객이 급감했다.

발리 주지사와 경찰서장은 "반미 분위기가 퍼지면서 미국인 관광객에 대한 테러가 있을 것이란 헛소문이 돈다.

그러나 우리의 안전은 철통 같다. 특히 발리인의 90%는 힌두교도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같은 당국의 긴장에도 발리는 여전한 휴양지였다. 여전히 풀장과 바다에서 해양 스포츠를 즐기고 관광을 할 수 있다. 각종 마사지를 받는 것도 재미있다.

한국에서 발리를 가려면 국적기를 이용하거나 가루다 인도네시아항공(02-773-2092)으로 자카르타를 거쳐 가는 방법이 있다.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의 경우 월.수.금요일 주 3회 운항하며 왕복 항공요금은 2인 기준으로 요일에 따라 1인당 54만~61만원이다.

가루다항공을 이용하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은 있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중간 경유지를 관광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인도네시아 발리=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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