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올 최고치…외국인에 휘둘렸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5일 주가가 숨가쁘게 올랐다.

반도체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외국인 순매수, 선물가격 상승에 따른 기관투자가의 프로그램 매수라는 3박자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날 ▶종합주가지수 연중 최고치(688.31)▶거래대금 연중 최고치(4조7천억원)▶지수선물 거래대금 사상 2위(10조5천억원)▶옵션시장 거래량 사상 최초로 1천만 계약 돌파(1천1백10만 계약) 등 각종 신기록이 쏟아졌다.

그러나 외국인이 좋아하는 핵심 우량주만 급등한 탓에 상승장에서 소외된 개인투자자들은 썰렁한 분위기였다.

굿모닝증권 이근모 전무는 "외국인에게 휘둘리는 서울 증시의 체질을 잘 보여준 하루였다"고 지적했다.

◇ 반도체와 외국인의 힘=반도체 경기가 살아날 것이란 외국 증권사의 분석이 꼬리를 물면서 전날 미국 증시에 불어닥친 반도체 열풍이 서울 증시에선 태풍으로 변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처음으로 가격제한폭까지 올랐고 반도체 장비업체에서 무더기 상한가가 쏟아졌다. 아남반도체도 상한가를 기록했고 하이닉스는 차익매물이 나와 4.51% 상승에 그쳤다.

외국인들은 이날 삼성전자를 1천98억원어치 순매수한 것을 포함해 2천21억원어치를 순수하게 사들였고 선물시장에서도 올 들어 가장 많은 7천1백56계약의 지수선물을 순매수해 선물지수를 5.6포인트(6.91%)나 끌어올렸다.

선물가격이 급등하자 기관들은 선물을 팔고 현물 주식을 사들이는 프로그램 매수에 나서 올 들어 가장 많은 4천5백억원어치를 순매수해 외국인과 쌍끌이 매수에 가세했다.

◇ 고개 드는 낙관론=예상 밖으로 증시가 달아오르자 증권사들은 연말 장세를 낙관하고 있다. SK증권의 박용선 투자정보팀장은 "과열기미에다 프로그램 매수잔고가 많아 오는 13일 선물.옵션 만기일 부근에서 장이 크게 출렁댈 우려가 있지만 연말까지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LG증권.교보증권 등은 지수가 전고점(674)을 돌파한 만큼 700선을 넘어 800선 고지를 시험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 외국인의 잔치='작전'을 방불케 했다. 외국인의 선물.현물 순매수로 무거운 종목인 삼성전자.SK텔레콤이 '심장 약한 사람은 쳐다보기 겁날 정도'(세종증권 대치동지점 고객)로 가파르게 올랐다.

SK증권의 박팀장은 "외국인들이 시가총액의 37%를 보유한 데다 삼성전자.국민은행.포철 등은 지분율이 60% 수준에 달해 유통물량이 말라버렸다"며 "외국인 마음먹기에 따라 서울 증시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블루칩 거래를 분석해 보면 외국인이 쥐락펴락하는 증시 체질이 나타난다. 삼성전자의 경우 전체 거래량 2백30만주 가운데 프로그램 순매수가 37만2천주, 외국인 순매수가 43만9천주에 달했다. 외국인 순매수와 프로그램 매수가 거래량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해 주가는 소폭의 매수에도 거침없이 상한가로 올라선 것이다.

SK텔레콤도 전체거래량의 절반 가량을 외국인 순매수와 프로그램 매수가 차지해 매물공백 상태가 빚어지면서 주가가 단번에 10% 가량 치솟았다.

교보증권 김석중 상무는 "외국인들은 지난 두달 동안 거둔 차익을 확실하게 챙기기 위해 13일 선물.옵션 만기일까지 선물.현물시장을 교란하며 수익률 극대화를 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국인들이 잔치판을 주도하고 기관들은 수동적인 프로그램 매매로 들러리를 서는 구도라는 것이다.

삼성증권 이남우 상무는 "순매수 강도는 들쭉날쭉하겠지만 외국인들은 마땅한 대체시장이 없어 한국주식을 팔고 나갈 이유가 당분간 없다"고 전망했다.

반면 이날 개인투자자들은 5천26억원어치를 순매도해 급등장에서 소외됐고 코스닥시장도 시들한 분위기였다. 증권업협회는 "개인들의 순매도 금액이 고스란히 증시에 남을 것으로 보여 고객예탁금은 이번 주 말께 10조4천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철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