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선수협 "회장사절"의 내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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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꼭 1년 전이었다. 당시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워크숍에 모인 선수들은 비장했다. 주축 선수 6명이 방출되는 극단적인 대립 상황에서 선수들은 단결했고 '동계훈련 거부'를 결의하며 단합된 힘을 보여줬다.

1년 뒤인 지난 4일 경북 경주에선 선수협 4기 총회가 열렸다. 선수협은 누가 뭐래도 프로야구의 한 축을 형성할 만큼 성장했다. 예전과 같은 구단의 탄압과 회유(□)는 사라졌고 몇몇 구단은 직원까지 보내 선수들을 돌봐줄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선수협을 짊어져야 할 선수들이 이젠 발뺌이다. 총회는 차기 회장을 뽑지 못한 채 끝났다. 표면적인 이유는 현대와 두산의 주장이 아직 선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지만 내막은 아무도 회장에 나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백50여명이나 왔지만 실상 이름깨나 한다는 선수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기아 주장인 이종범은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또 얼마 전까지 선수협 주축이었던 마해영(삼성).최태원(SK)도 참석하지 않았다.

노장이라고 참석한 선수들도 대부분 트레이드와 자유계약선수(FA) 정보를 얻기에 바빴다. 1년 전까지 '선수 권익 옹호' 등을 얘기하던 이들의 대화는 "얼마 준대□" "팀 옮기고 싶어요. 힘 좀 써주세요"로 바뀌었다.

어차피 선수협이 선수들을 위한 단체인 만큼 이들이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무엇인가 얻어내려 한다면 그만큼 책임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외면하는 건 실망스럽다.

선수협이 있으면 나한테 유리해 좋지만 정작 그 부담을 지는 게 싫다는 건 '무임승차' 심보다. 언제나 구단으로부터 받아내기에만 익숙한 탓일까.

경주=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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