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중소기업에 대한 가격 착취와 기술 탈취 근절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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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나라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의 관계다. 일부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자생력 있는 중소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어떤 형태로든 대기업의 직간접적인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게 사실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원부자재를 납품하는 하도급 거래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항상 거론돼 온 명제는 ‘상생(相生)’이었다. 좋은 말이다. 정부도 틈만 나면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 방안을 모색하라고 주문해 왔다.

그러나 대기업이 하도급 업체의 납품 단가를 후려치거나 중소기업이 애써 개발한 기술을 가로채는 파렴치한 행위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부당하게 납품가격을 깎는 불공정 하도급을 경험했다는 중소기업의 비율이 23.8%에 이르고, 심지어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의 기술을 빼앗거나 유용했다는 응답도 22.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래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상생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이런 식의 대기업 횡포가 없어지지 않는 한 위기 때마다 중소기업은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유망한 중소기업은 아예 성장의 싹이 잘릴 수밖에 없다.

마침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같은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정부의 서슬 퍼런 단속만으로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중소기업의 역량을 키우지 않으면 대기업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대기업의 자각이 앞서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중소기업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세계시장에서 결코 우위를 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식경제부는 최근 국내 소프트웨어 관련 6대 대기업과 58개 중소기업을 모아 상생협력위원회를 만들었다. 앞으로 갈수록 중요해지는 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공정한 거래환경이 필수적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위원회 구성이나 상생의 구호보다는 대기업의 각성과 자발적인 참여가 진정한 상생의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