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리포트] 토지거래허가제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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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땅을 살 경우 자금출처 조사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되느냐는 문의전화가 요즘 부쩍 많아졌다.

경기도 판교 신도시 개발예정지 주변이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에서 풀릴 가능성이 큰 대도시 외곽지대와 같은 노른자위 땅이 최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이런 돈 되는 땅을 사고 싶지만 혹시 불이익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돼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분위기다.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토지거래허가제의 약발이 지금도 있는 모양이다. 자고 나면 몇백만원씩 오르던 투기시대엔 허가제의 위력이 대단했다.

국세청의 자금출처 조사로 패가망신한 사람도 부지기수였고 투기자로 몰려 신세를 망친 유력 인사도 한 둘이 아니었다. 요즘들어서는 이같은 허가제의 위력이 크게 쇠락해 오죽하면 종이호랑이라고 불리겠는가.

하지만 현장 부동산 중개업자들에겐 토지거래허가제가 별 것 아닐지 모르지만 실수요자들로선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자금출처 조사라는 극단적인 조치는 없지만 거래하는 데 불편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허가구역 내 땅은 일정 규모 이상이면 반드시 해당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용목적에 맞지 않으면 허가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허가를 안받고도 거래는 가능하지만 허가증이 없으면 자기 명의로 등기가 안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허가대상은 도시계획구역 안의 경우 ▶주거지역 2백70㎡▶상업지역 3백30㎡▶공업지역 9백90㎡▶녹지지역 3백30㎡▶구역지정이 안된 지역 2백70㎡가 넘는 땅은 다 포함된다. 도시계획구역 밖이면 ▶농지 1천㎡▶임야 2천㎡▶그외 토지 5백㎡ 초과한 땅은 허가 대상이다. 이보다 작은 땅은 일반 지역처럼 거래가 자유롭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판교 주변의 전원주택단지도 면적이 크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지역의 땅은 아무나 살 수 없다는 점도 기억해 둬야 할 내용이다. 농지는 토지가 있는 시.군 거주자여야 하고 그것도 농사용으로 사야 한다. 또 해당 농지에서 20㎞ 이내의 시.군에 사는 농민도 매입자격이 주어진다. 임야는 관할 구역이나 인접 시.군에 6개월 이상 거주한 농민이어야 하고 주택은 실제 거주할 실수요자에게만 허가가 나간다.

규정만 보면 섣불리 덤벼들 수 없게 돼 있다. 실수요가 아니면 땅을 사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허점이 많다.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고 실수요자 여부를 따지기도 어렵다는 게 중개업소들의 지적이다. 평상시에는 매입자에 대한 자금출처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돈 될만 땅은 이미 외지인 손에 넘어간 상태에서 허가구역으로 지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반응이다.

실수요자들의 땅 거래만 번거롭게 하는 허가제보다 일부 토지주들에게 돌아가는 개발이익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장치 마련이 더 급하다는 얘기다.

최영진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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