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원더풀 라이프' 8일 개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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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일본의 젊은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의 '원더풀 라이프'를 보려면 다소 인내력이 필요하다. 20여명의 출연자들이 털어놓는 인생 고백을 다큐멘터리-그것도 짧게 짧게 반복하면서-로 풀어내 너무 잔잔하지 않느냐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에 깔리는 여운은 그 어떤 작품 보다 진득하다. 죽음이란 어두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분위기가 따뜻하고, 다큐멘터리라는 딱딱한 어법에 상당 부분 기대면서도 팬터지 영화 이상의 마력을 품고 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묘한 긴장감이 발생한다.

발상은 단순하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기 직전 망자(亡者)들이 잠시 거쳐가는 중간역인 림보(Limbo)를 설정한다. 그리고 그곳을 들른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느냐고 물을 뿐이다.

물론 대답은 가지가지다. 출산의 기쁨을 말하는 주부부터 섹스의 환희를 되뇌이는 할아버지까지 십인십색이다.

중학교 시절 통학 전차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의 감미로운 감촉을 드는 사람도 있고, 태평양 전쟁 때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미군 병사에게 담배와 밥을 얻었을 때를 회상하는 사람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 속 영화'가 나온다는 점. 1주일간 림보에 머무르는 이들의 사연을 먼저 듣고, 나중에 그 행복한 기억을 영화로 제작해준다.

이렇다할 기억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와타나베(나이토 다카시)와, 비슷한 이유로 림보에서 50년간 머물고 있는 면접관 모치즈키(아라타)의 대립과 화해가 백미다. 특히 "누구나 타인의 행복의 일부분"이라는 평범한 진실이 가슴에 와닿는다. "영화란 바로 이런 게 아닌가"하는 감독의 육성을 듣는 듯 하다. 전체 관람가. 8일 개봉.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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