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주먹들 지존대결 영화 '화산고'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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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영화 '화산고'(김태균 감독)는 무협소설의 액션을 영상으로 옮긴 대활극이다. 무너진 정의를 일으키고, 최고의 고수(高手)를 향해 매진하는 '무사'들을 그리고 있다.

다만 젊은 관객을 의식한 까닭에 '강호의 세계'를 시간.공간 미상의 고등학교인 화산고로 옮겼다. 이른바 무협지의 현대화다.

때문에 주연들도 삿갓 쓰고 검을 찬 협객이 아니라 검정 교복을 입은 고교생이요, 또 그들을 억누르는 선생님들이다.

'화산고'는 무엇보다 한국영화의 기술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언어적 수사나 만화적 과장으로 표현됐던 무림을 영상으로 재현하는 데 도전하기 때문.

'구미호'에서 시작된 한국영화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어느 선까지 진전했고, 또 '비천무'에서 선보였던 와이어 액션이 어느 정도로 성숙했는지 알아보는 시금석이 될 것 같다.

일단 시도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요즘 할리우드에서도 성행하는 동양식 액션에 비해 그다지 손색이 없다. '매트릭스'나 '와호장룡'을 섞어놓은 듯한 인상도 주지만 특수효과.특수영상 등 국내 기술진의 괄목한 성장을 읽을 수 있다.

예컨대 지난해 '비천무'보다 액션의 힘이 살아 있고, '단적비연수'에서 지적됐던 컴퓨터 그래픽의 엉성함도 보기 좋게 극복했다. 63억원이란 제작비를 들인 작품답지 않게 신인들을 과감하게 기용한 것도 긍정적이다.

'화산고'는 철저히 화면을 즐기는 영화다. 스크린을 가로지르는 현란한 무술과 귀청을 때리는 강력한 비트음이 객석을 얼얼하게 만든다.

인물들의 피부색은 그대로 유지한 채 배경 화면은 암녹색으로 처리한 1백% 디지털 색보정도 환상적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화산고'에는 여덟번이나 퇴학당한 문제아 김경수(장혁)를 중심으로 화산 제1의 실력자가 되려고 무공을 닦는 많은 학생들이 나온다.

화산고를 평정한 송학림(권상우), 역도부 주장 장량(김수로), 럭비부 주장 심마(김형종), 검도부 주장 유채이(신민아) 등. 그리고 교감의 사주를 받아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들어온 교사 5인방(대장 마방진 역에 허준호)이 학생들과 맞붙는다.

언뜻 무너진 교육현장을 은유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소품'에 불과할 뿐. 영화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기(氣)와 기가 격돌한다.

눈에서 뿜어나오는 에너지로 선생님이 던진 분필을 반대 방향으로 날려보내고, 손에서 발산하는 장력으로 상대방을 허공에 뜨게 하고, 공중으로 솟구치는 초능력으로 대나무 숲을 날고, 3백60도 공중제비를 몇차례 돌며 상대를 무너뜨리고 등등. 특히 김경수와 마방진이 결전을 벌이는 마지막 신에선 지금까지 나온 무술이 총집결한다.

마치 레이저총을 쏘듯 손바닥의 기로 물기둥을 일으키고, 쏟아지는 폭우를 정지시켜 물방울로 만들고는 그 힘을 모아 상대방을 제압한다.

그만큼 젊은층에 대한 호소력이 커 보인다. 하지만 토너먼트 경기를 벌이듯 액션이 끊이지 않아 강약의 리듬이 훼손된다. 초반부의 인물 소개도 과도하게 해설적이고, 또 너무 빨리 지나가 따라잡기가 버겁다.

김경수와 유채이의 사랑을 섞어 분위기를 이완시키려고 하지만 '액션의 잔치'에 파묻혀 별다른 감동이 없다. 기술적으로 볼만한 액션을 만들어냈다는 것, 그 자신감이 가장 큰 자산으로 남을 것 같다.

12세 관람가. 8일 개봉.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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