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대학생활은 이렇게] 80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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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얼마 전 치러진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이 예년보다 어려웠던 탓에 학생들의 표정이 어두운 걸 보면서 한국에서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고3수험생들의 애환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대학생활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그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임을 알기에 힘든 시간은 곧 지나가 버릴 것을 믿는다.

대학 시절은 언제 생각해도 참 넉넉하다. 졸업 후에도 대학 때의 추억은 늘 가슴 한 켠을 풍요롭게 해 주어 곱씹어 되새기고픈 기억이다.

우리 80년대 학번들은 아마도 대부분이 비슷한 정서와 경험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암울한 독재시대 속에서 민주화를 향한 뜨거운 열기로 가득찼던 시대적 배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실을 등지고 책 속에 파묻히는 소극적인 모습이 아닌 비판적으로 현실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학생들은 '운동'의 길에 많이 동참했다.

비록 머리에 띠를 두르고 거리로 뛰어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마음만은 함께 했고, 모두가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동지였다고 믿는다.

통일방식, 운동의 방향 등 학생운동이 담고 있는 거대담론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대학이라는 곳이 사회와 직접 맞닿아 이론과 현실간의 괴리없이 '지행일치(知行一致)'를 실천할 수 있는 장이었다는 것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당시 대학생들은 사회로부터 지식인의 대접을 지금보다 많이 받았던 것 같다. 현실을 외면하는 교수들과 사회지도층을 향해 가감없이 비판할 수 있었던 분위기도 그 때문이다.

최루탄을 맞아가며 시위를 하는 현장에는 언제나 시민들의 박수와 응원이 끊이지 않았고, 선후배.동료들간의 동지애도 참으로 눈물겹도록 깊고 넓어 이 땅의 모든 어머니가 내 어머니였고 모든 아들.딸들이 내 자식들이었다.

당시에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믿음을 평생토록 간직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을 했으리라.

사회가 아무리 급변하고 메말라진다 해도 우리가 함께라면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그 믿음. 우리가 목숨걸고 투쟁했던 민주사회와 통일국가는 반드시 우리 손으로 이룩해 내리라던 그 믿음.

사회 곳곳에서 80년대 학번 동지들이 열심히 각자의 몫을 살고 있다. 우리가 함께 했던 대학시절의 경험들이 밑거름이 되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서로가 힘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임종석 의원은 한양대 무기재료공학과 86학번으로 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의장을 역임했다. 현실참여로 민주화에 앞장선 386세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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