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의 나눔, 아름다운 팔순] 전남곡성 이봉순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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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서 30년간 10남매를 뒷바라지해온 80대 할머니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그동안 모아온 돈을 자녀들의 모교에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전남 곡성군 곡성읍 읍내리 이봉순(李鳳順.82.사진)할머니는 4일 테니스 국가대표였던 장남 김문일(金文一.54.경일산업 사장)씨를 통해 자식들(5남5녀)이 다녔던 곡성 중앙초등학교에 장학금 2천만원을 전달했다.

지난 4월 대장암을 선고받고 투병 중인 李할머니는 최근 수술 후 2천6백20만원이 든 통장 하나를 자녀들 앞에 내놨다.

이 돈은 지난 20여년간 자녀들에게 받은 용돈을 아껴 모은 것.

"너희들이 이만큼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돼준 학교에 2천만원을 맡겨 애들 공부에 보탬을 주고, 나머지는 장례비용으로 쓰도록 해라."

19세 때 곡성으로 시집온 李할머니는 1972년 남편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뒤 집을 갈라 세를 놓고 농사를 지으며 당시 여덟살이던 딸(아홉째)을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등 자식들을 뒷바라지해 왔다.

李할머니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씩씩하게 학교에 가던 자식들을 보면서 용기를 얻곤 했다"며 "얼마되지 않는 돈이지만 어린이들이 훌륭하게 자라는데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남 金씨는 "형제들이 자영업자.교사.회사원 등으로 그만그만하게 살고 있다"며 "어머니의 뜻이 고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곡성=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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