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의 심리학] 10. 무대 공포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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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눈부신 조명이 켜지고 무대 출입구가 열리면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이 펼쳐진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입이 바싹 마르고 호흡이 가빠진다. 손바닥에는 땀이 나고 눈앞이 캄캄해진다.

칼슘 소모가 급증해 현기증마저 느낀다. 연주 도중 조그마한 실수라도 하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끝까지 제대로 해낼지 정말 의문이다. 객석에서 금방이라도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무대공포증, 정확히 말해 공연전 불안증(performance anxiety)이다.

연주가들은 남들이 선망하는 높은 수준의 연주 기량이야말로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온 이들은 뒤에서 남의 험담 늘어놓기를 좋아한다.

빈심포니 단원 60%가'음악가는 직업상 남을 시샘하고 깎아내릴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평가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과 주변의 지나친 기대와 실패와 사회적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 무대공포증의 원인이다.

미국 교향악단 단원 중 40% 이상이 연주 직전 혈압강하제.신경안정제 등 약물을 복용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 복용하는 사람도 19%나 된다.

또 미국 음악가들의 27%가 '고혈압'을 이유로 혈압강하제를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체중 상승.수면 불안.근육 피로감 등 약물 복용에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대공포증을 해결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소프라노 군둘라 야노비츠처럼 와인을 마시고 무대에 선 경우도 있고 낮잠을 자두거나 명상.기도.요가.자기최면 등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미신에 가까운 징크스도 다양하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무대에 들어서기 전 백스테이지에서 구부러진 못을 찾아야 안심한다.

이런 공포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누구라도 무대에 서면 평소 실력의 70~80%밖에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적당한 흥분은 공연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므로 애써 피하려 할 것만은 아니다. 결국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최선을 다하면서 연주를 즐기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낳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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