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폭력시위로 문제 풀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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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동계의 동투(冬鬪)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민주노총.전국농민단체총연맹 등 40여개 단체가 지난 주말 전국민중대회를 열어 서울 도심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어제는 사회보험노조가 전면파업을 결의했다.

철도.가스.지역난방.전력기술 노조 등 공기업 노조도 파업 찬반투표를 마치고 민영화 관련 법안이 국회에 상정될 경우 공동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노동계의 총공세로 경기 침체.정치 불안에 연말의 어수선한 분위기까지 겹쳐 국민의 위축된 마음을 더 스산하게 하고 있다.

노동계 요구는 세계무역기구(WTO)체결 반대, 쌀 개방 저지, 주5일 근무제 도입, 공기업 민영화 반대, 의료 공공성 확보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는 모두 쟁점 사항으로 하나 같이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WTO협정만 해도 민중 생존권을 위협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하지만 대세는 쌀 개방으로 굳어졌고, 주5일 근무제 역시 간단히 해답을 찾기도 힘들고 일방적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사안별로 지혜를 모아 대안을 세울 일을 세 과시와 폭력 시위로 밀고간다고 해서 어떤 해답을 찾을 수 있겠는가.

격렬한 시위가 늘어나는 것도 걱정이다. 지난 주말은 물론 하루 평균 1백여건의 집회.시위가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데다, 대규모 인원이 동원된 시위가 주말에 집중돼 그때마다 교통 혼잡과 충돌로 지역 상인들의 피해는 이미 외면키 어려운 상황이다. 근로자의 권익 투쟁이 법으로 보장돼 있다 해도 그것이 남의 권익에 피해를 줘서는 안될 것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영향은 근로자에게 먼저 닥친다는 데서 노동계 투쟁에 일리가 있는 면도 있다. 실업 급증 등 노동환경은 어려워가는데 노사정위원회도 무기력함을 보였고 상대적으로 노동자를 배려한다는 현 정부도 올해 들어선 거리를 두고 있다.

그렇다고 노동계의 외길 강경 투쟁으로 문제를 풀 수는 없다. 지금은 국내외 경제 여건에 먹구름이 끼여 있다. 힘을 모아 지혜롭게 대처하면 뜰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깊은 수렁으로 가라앉을 수 있는 갈림길이다. 때문에 노동계의 현명한 대처가 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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