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우석 칼럼

나라를 위한 몇가지 파격 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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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세상이 너무 어지럽다. 발전을 위한 진통이라고 애써 자위해 보지만 그 정도가 심해 걱정이 많이 된다. 나랏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아래위도 몰라보고 또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무책임.무예의.무절제를 줄이지 않고는 나라가 제대로 될 수 없다. 이 망국의 풍조를 고치려면 다소 파격적인 극약 처방이 필요할 것 같다. 기본 예의와 질서를 어기면 재산.목숨.명예가 손해나게 만드는 것이다.

*** 정책 실패 땐 보유재산 내놓게

첫째는 정책 상벌제다. 무책임한 정책이 너무 많은데 대개 책임 소재가 모호하다. 요즘 경제가 어려운 것은 국민의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과중한 가계부채 때문이라고 하는데 옳은 말이다. 그러나 카드 대란 책임자가 누군지 아직 불분명하다. 국민의 정부도 IMF 사태란 큰 빚을 떠안았었다. 그 대신 카드빚을 넘겼다. 참여정부는 카드빚을 안은 대신 투자 부진을 넘길 것이다. 그래서 투자를 살리기 위해 연기금 등을 공공사업에 쓰는 한국형 뉴딜 정책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소신껏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좋은데 누가 책임지고 누가 동조하는 것인지 분명히 해놓을 필요가 있다. 일부 우려대로 연기금 사업이 손해가 나서 세금으로 메우는 사태가 생기면 책임질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정책 판단에 대해선 형사적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으니 형사처벌 대신 재산상의 손해를 보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손해를 다 메울 수 없다 해도 가령 보유 재산의 일정 비율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하자는 것이다. 동조자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나랏돈을 내 돈 같이 아낄 것이 아닌가. 징벌만 주는 것은 불공평하니 그 사업이 잘돼 경제가 살아나면 재산의 일정 비율을 보너스로 줘 형평을 맞춰야 할 것이다.

둘째는 공개 결투제다. 지금 천방지축 아래위도 없이 언행을 함부로 하는 것은 그렇게 하고도 무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음해.중상.인격모독을 예사로 할 뿐더러 조상님들까지 욕을 당하는 판이다. 그래도 우리는 평화민족이라 그런지 다들 무사하다. 옛날 일본에서 무사들이 칼을 차고 다닐 땐 언행을 무척 조심했다고 한다. 잘못하면 목숨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결투제를 도입해 심하게 무례한 사람은 책임을 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괜히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가뜩이나 바쁜 사법당국을 번거롭게 할 필요도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목숨을 걸지 않고는 함부로 무책임한 언행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정책상의 큰 쟁점이 있을 때 양쪽 대표가 결투를 해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본심은 따로 있는데 괜히 명분을 붙여 끝없는 신학 논쟁을 하느니 승부도 분명하고 뒤끝도 깨끗하게 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선 연구와 논의가 좀더 필요할 것이다.

*** 스스로 한 말 지키게 해야

셋째는 말씀 보관소를 만드는 것이다. 요즘 말들을 너무 함부로 하고 말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것 같다. 모두 너무 잘 잊어버리기 때문에 나중에 창피를 당하지 않고 넘어간다. 그래서 일단 뱉은 말은 빈틈없이 보관해 두고두고 따져보자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수준까지는 안 가더라도 수도 한복판에 큰 말씀관을 지어 책임있는 사람이 한 말을 크게 전시해 놓는 방법이다. 그러면 평소 많은 사람이 보게 되고 자손들도 조상이 한 말을 보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말을 하기 전에 조심하거나 스스로 한 말을 지키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요즘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헌재 결정은 사법 쿠데타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연기금은 지키겠다" "민간인이 휴전선의 삼중 철책을 뚫고 넘어갔다" 등 보관할 말씀이 너무 많아 곧 말씀관을 증축해야 할지 모른다.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