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어디로 가야하나] 1.우후죽순 늘어난 시민단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한국의 시민사회 단체들은 90년대 들어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현재까지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자세한 조사는 없다. 지난 96,99년 '시민의 신문'사가 두차례 전수조사를 실시해 각각 그 이듬해에 펴낸 '한국민간단체총람'이 전부다.

이 조사들에 따르면 96년 말 우리나라 시민사회단체는 약 3천8백개(지부 포함 1만여개),99년 말엔 6천8백개(지부 포함 2만여개)에 달한다.불과 3년 사이에 두배로 는 것이다.물론 이는 주로 비정부기구(NGO)들을 대상으로 한 것.

조사에 응하지 않았거나 시민운동이 아닌 복지.자원봉사.지역개발 등 다른 서비스 분야 단체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99년도 조사에선 전체 단체의 56.5%가 90년대에 창립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IMF 사태를 겪고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90년대 후반에 지방 시민단체들의 수가 급증했다. 96년도엔 전체 NGO의 68.9%가 서울에 분포하고 있었으나 99년도엔 54.8%로 비율이 낮아지고 거의 절반이 지방에 분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시민단체들이 이렇게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아직도 많은 단체들이 운동가나 특정회원을 중심으로 운영될 뿐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적다. 시민들은 선뜻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기부하기를 꺼리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시민사회 역사가 일천해 시민들의 사회참여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NGO들을 포함한 모든 민간단체들의 투명성.책임성을 보장해 주는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한 것도 한 중요한 이유가 된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우리도 일본처럼 지난해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을 제정, 비(非)법인 단체들의 등록을 받았지만 이는 행자부의 사업예산 지원을 위해서였을 뿐"이라며 "매년 지원된 예산에 대해선 감독.평가를 하지만 단체 자체의 전반적인 신뢰까지는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그들 등록단체들이 얼마나 건실한 단체인지, 믿을 수 있는 단체인지 등은 정부 등록 여부만 가지고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다.미국.영국 등 선진국들에선 민간단체들이 주 정부에 등록되는 것과 동시에 주 검찰에 자동등록이 되고 매년 검찰에 재정보고를 해야 한다. 국민들은 주 정부와 검찰이 개설한 특수 전화번호만 돌리면 어느 단체가 건실한 단체인지 알 수가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 단체들이 국민의 신뢰 속에 제 자리를 잡으려면 우리도 하루빨리 법적.제도적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시민사회 단체들의 무분별한 증가가 오히려 국민에겐 번잡스럽게만 느껴질 위험이 있다.

이창호 전문위원(본사 시민사회연구소 부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