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 식당 허가부터 간판 크기까지 쥐락펴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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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지방선거 #최근 퇴직금을 털어 은평구에 새 건물을 짓고 주점을 연 김모(56)씨는 가공할 구청의 힘을 실감했다. 그가 건물을 짓고 주점을 여는 데 필요했던 수십 개의 인허가권은 모두 구청이 쥐고 있어서다.

구청 건축과에 신축 허가서를 내고 보름 후 신축 허가를 받았다. 예정대로 공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설계도와 건물 내외를 샅샅이 대조한 뒤에야 준공 허가를 내줬다. 한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주점을 내기 위해 보건위생과의 영업허가가 필요했다. 김씨는 “구청은 상업지역인지, 건축물 용도가 맞는지 등을 따진 후 허가를 내줬다”며 “간판을 달 때는 도시 디자인 담당 부서가 옥외 광고의 개수와 크기, 표시 내용, 디자인까지 점검하는데 정말 죽을 고생을 했다”고 말했다.

#서초동의 단독 주택가에 거주하는 김상현(42)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웃들과 얼굴을 붉히며 주차전쟁을 치른다. 김씨는 “골목길 입구에 새로 들어선 12층짜리 빌딩의 음식점을 찾는 손님들 차가 밤에도 동네 골목골목을 차지한다”며 “퇴근하면 주차할 곳이 없어 골목길을 몇 바퀴씩 도는 데 이골이 났다”고 말했다. 참다 못한 동네 주민들은 새 빌딩이 선 뒤 골목길이 주차 전쟁터로 변했다며 끊임없이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해결되지 않고 있다. 구청장의 결재가 나지 않았다는 게 담당자 말이었다. 김씨는 청장이 주택가 주차전쟁도 해결할 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6·2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인 구청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유권자의 실생활에는 특별시장이나 도시자 같은 광역단체장보다 구청장을 비롯한 230개 기초자치단체장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 주정차 단속이나 보육시설 설치, 노래방·오락실 등의 인허가처럼 주민들의 실생활과 밀착된 행정은 모두 기초단체장 권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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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의 막강한 파워는 예산권과 인사권에서 나온다. 서울시내 25개 구청은 올해 평균 3124억원의 예산을 쓴다. 이 중 구청장은 인건비·업무추진비·사회복지비 등을 제외한 예산의 집행권을 갖고 있다. 구청 한 해 예산의 대략 20% 수준이다. 마을공원 조성, 가로등 설치, 20m 이내의 도로 정비나 개선 등은 구청장 재량이다. 송석휘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구청장이 투자 우선 순위를 어디로 결정하느냐에 따라 주민들의 생활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청장은 소속 공무원 1200여 명의 승진·전보·징계 등의 인사권도 행사한다. 관내 10~20여 개씩인 동사무소의 동장 임명권도 구청장 몫이다. L구청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은 구청장이 인사권을 쥐고 있어 밉보이지 않기 위해 말 한마디 하기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각종 정책도 구청장의 입맛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청장은 또 구청의 하부 조직인 주민자치지원단체협의회나 생활체육협회·대한노인회·새마을운동협의회 등의 단체에 자기와 코드가 맞는 사람을 앉힐 수 있다. 선거 때마다 공무원의 줄서기나 충성맹세가 되풀이되는 이유다.

구청장의 인허가권은 (광역자치단체) 시장보다 세다. 21층 미만 연면적 10만㎡ 이내의 건축물의 신·증축이나 인허가는 모두 구청장 소관이다. 관내 위법 건축물 적발, 1년 미만의 도로 점용, 옥외광고물 설치 허가권도 행사할 수 있다.

교육은 직접적으로 시·도 교육감의 영역이지만 구청장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무상급식을 할 수 있는 예산 편성과 집행이 구청장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장정훈·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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