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시위대, 해산 통첩 거부 … 도심 곳곳서 게릴라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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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반정부 시위대(UDD·일명 레드 셔츠)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카티야 사와스디폴 전 특전사령관이 피격 닷새 만인 17일 숨졌다. 이날 카티야 전 특전사령관이 입원한 방콕의 한 병원에서 카티야 사령관의 딸이 아버지의 모자를 잡은 채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방콕 로이터=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태국 군경이 봉쇄한 시위 거점 라차프라송 거리 주변은 시위대와 군경 간의 총격전이 벌어지며 부상자가 속출했다. 승전기념탑 주변에서도 교전이 일어나 게릴라전을 방불케 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라마4세 거리에서 대치한 양측 사이에는 유조차가 버려져 급박한 상황을 대변했다.

진압 당국은 이날 오후 3시 이후 봉쇄 지역에 들어간 태국 국내외 기자들에게 즉시 안전지역으로 나올 것을 요구했다. 이로 인해 진압작전이 곧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로 현장의 위기감이 고조됐다. 태국 주재 중국대사관 측은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는 현장에 대사관 직원을 보내 자국 기자들을 모두 데리고 나왔다. 태국 정부는 헬기에서 “자진 해산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된다”는 내용의 전단지를 뿌렸지만 시위대는 신경 쓰지 않았다. 현장엔 폭풍 전야의 적막이 가득했다. 시위대 지도부는 유엔의 중재 아래 타협점을 찾자고 제안했으나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는 “내정 문제”라며 유엔의 개입을 거부했다.

◆시위 지도자 사망=태국 반정부 시위대의 최고 강경파 지도자가 17일 사망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지지 단체인 ‘반독재민주연합전선(UDD·일명 레드 셔츠)’ 지도자인 카티야 사와스디폴은 나흘 전 외신과의 인터뷰 도중 머리에 의문의 총격을 당했다. 카티야가 사망함에 따라 두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태국 시위 사태는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망이 발표된 뒤 친정부 매체 PBS 방송국 건물이 M79 유탄발사기 공격을 받았다. 카티야가 지난 13일 저격을 당한 뒤 시위가 격화돼 지금까지 37명이 숨지고 260여 명이 다쳤다. ‘레드 셔츠’의 반정부 시위가 본격화된 3월 중순 이후 진압 군경을 포함한 사망자는 66명, 부상자는 1600여 명에 달한다.

◆최후통첩=아피싯 총리는 시위대의 자진 해산을 종용했다. 이번 사태를 총괄하고 있는 비상사태 상황센터(CRES)는 시위대에 17일 오후 3시(한국시간 오후 5시)까지 자진 해산하지 않으면 형사처벌 하겠다고 최후 통첩했다. 정부 측에서 좀 더 시간을 줄 것으로 보이지만 시위대는 해산을 거부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맞서고 있다. 진압 당국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한 작전을 가능한 한 빨리 시작할 예정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진압 당국은 우선 부녀자와 노약자부터 봉쇄 구역에서 빼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들이 ‘인간방패’로 나설 경우 진압 작전이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부녀자와 노약자 100여 명은 군이 봉쇄하고 있는 지역 내 파숨 와나람 사원으로 피신했다.

방탄조끼를 입고 태국 시위 현장을 취재하고 있는 정용환 특파원.

◆호텔도 총격 받아=17일 새벽엔 시위대 점거 인근 지역 호텔 건물에 총격이 가해졌다. 룸피니 공원에서 벌어진 총격전으로 총탄이 건너편에 위치한 두싯타니 호텔 쪽으로 날아들었다. 이 때문에 한밤중에 100여 명의 투숙객이 지하실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호텔은 시위대와 진압군이 유혈충돌을 벌이고 있는 지역으로부터 5㎞ 이상 떨어져 안전지대로 꼽혔던 곳이었다. 호텔은 이날 정오부터 임시 폐쇄됐다. 호텔의 외벽에는 총격 자국이 선명했다. 군 병력은 호텔 진입로에서부터 출입을 차단했다. 호텔이 위치한 관광 중심지 살라댕로(路)는 행적이 끊긴 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만 넘쳤다. 

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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