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김은중, 외눈으로 쏘아올린 '눈부신' 감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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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샤프' 김은중(22·대전 시티즌).

1998년 한국 청소년축구대표팀이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일본을 2-1로 꺾고 우승한 쾌거를 기억하는 팬들은 아직도 신세대 스타 이동국(23·포항 스틸러스)의 화려함과 김은중의 유연함을 함께 떠올린다.

1m84㎝의 키로 겅중거리며 뛰어다니다가도 절묘한 페인팅으로 상대 수비 한두명쯤은 가볍게 제치고 득점 기회를 잡거나 투톱 파트너 이동국에게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주는 김은중의 모습은 '날카로움(샤프)' 자체였다.

한동안 축구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김은중이 왼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어 사실상 '외눈'으로 몇년째 선수생활을 했음이 최근 밝혀져 축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FA(축구협회)컵에서 4경기 연속골을 기록,팀을 창단 후 첫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와 득점왕 2관왕에 오르자 감동으로 변했다.

모 방송국에서는 극적인 김은중의 인생 드라마를 시리즈로 제작·방영하기 위해 요즘 그를 따라다니며 일거수 일투족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인간 승리의 주인공으로 변신한 김은중,그를 만났다.

-FA컵 2관왕에 올랐다. 소감은.

"프로에 와서 상복이 별로 없었다. 그동안 인연이 없던 상을 한꺼번에 몰아서 탄 느낌이다. 기쁘다. 팀이 힘들게 결승까지 올라왔고 우승까지 하게 돼 MVP 시상식 단상 위에 선 순간 울컥하며 감정이 북받쳤다.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선.후배들한테서 축하전화를 수십통 받았다.'수고했다. 다친데는 없느냐'는 내용들이다."

-98년 이후 좀 부진했다.

"99년 초부터 나을 만하면 또 다치곤 해 제대로 뛸 수 없었다. 99년 2월 청소년대표팀 평가전 때 오른쪽 발목을 접질려 인대가 늘어나 한달 가량 공을 못찼다.8월에는 연습 도중 오른쪽 무릎 연골을 다쳐 두달간 쉬어야 했다. 12월에는 바레인과의 올림픽 최종 예선에 대비해 대표팀에서 연습하다 오른쪽 무릎을 다시 다쳤다. 결국 독일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다. 지난해 4월에는 무리해서 회복 훈련을 하다가 무릎 상태가 나빠져 한달 가량 쉬었다. 또 8월에는 왼쪽 종아리 근육이 파열돼 치료받았고 11월에는 왼쪽 발목을 접질려 한동안 고생했다. 컨디션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운동하다 또 다치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지난해와 비교할 때 경기 스타일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규칙적으로 꾸준히 했다. 시즌 중에도 2~3일에 한번씩은 20~30분 가량 웨이트를 통해 근력을 길렀다. 비시즌 중에는 한시간 정도로 시간을 늘려 한다. 다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올해 부상이 없다보니 적극적으로 몸싸움도 할 수 있었다."

-역시 왼쪽 눈에 관심들이 많다.

"왼쪽 눈으로는 바로 앞에 선 사람의 얼굴도 구별할 수 없다. 하지만 거리 감각이 없어 불편할 뿐이지 운동하는데 큰 지장은 없다. 동북중 3학년때 경기 도중 공에 왼쪽 눈을 강하게 얻어 맞은 후 수술까지 받았지만 시력은 좋아지지 않았다. 언제 지금처럼 거의 못보게 됐는지 모를 정도로 서서히 나빠졌다. 98년 청소년대표팀으로 뛸 때도 왼쪽 눈은 지금과 같은 상태였다."

-좌절이 컸을 것 같다. 어떻게 극복했나.

"한순간에 시력을 잃은 게 아니고 서서히 볼 수 없게 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실명'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때문에 크게 좌절하거나 방황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단짝으로 지내는 축구 친구 2명에게는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오른쪽 눈으로만 보는 것에 적응하는데 특별한 방법은 없었다. 힘들었지만 센터링을 받아 슛을 때리는 세트플레이 연습 때 공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집중력을 키우는 훈련을 반복하다보니 무리없이 공을 찰 수 있게 됐다. 이태호 감독님은 내가 한쪽 눈이 거의 안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색을 안하는 눈치였다."

-대표팀에 다시 뽑힐 수 있을 것 같나.

"축구선수라면 당연히 대표팀 욕심이 있는 것 아닌가. 나도 그렇다. 그러나 크게 신경은 안쓴다. 대표팀에서 탈락했을 때도 실망하거나 연연하지 않았다. 내가 원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팀에서 열심히 뛰다보면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여자친구는 있나.

"동갑내기 대학생 친구가 있다. 사귄지 3년 됐다."

-앞으로의 계획은.

"부상없이 꾸준히 공을 찰 수 있으면 좋겠다. 내년에도 팀이 좋은 성적을 내도록 열심히 뛰겠다."

신준봉 기자

*** 김은중은…

.1979년 4월8일생

.1m83㎝, 73㎏

.출신교:동북 중.고

.경력:1997년 대전 입단

1998 청소년 대표

1999 올림픽 대표

2001 국가대표

.올시즌 성적: 35경기 출장, 13골, 6어시스트

.통산성적: 1백18경기 출장, 28골, 10어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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