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의 거리문화 읽기] 연예인과 미디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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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몇 주째 신문 가판대의 스포츠 신문 표제들은 한 여자 탤런트 얘기를 싣고 있다.폭로,내 여자,왕내숭,환각연기라는 초기의 타이틀이 바뀌어 가면서 아프가니스탄에 떨어지는 미군폭탄처럼 연속적으로 작열한다.

스포츠 신문 뿐만이 아니다.종합 일간지들도 보통 때와는 다르게 일면에 기사를 실었었다.그것도 칼라 사진까지 곁들여서.기사를 읽어보면 그 여자 탤런트가 한 남자의 집에서 필로폰을 무엇엔가 타마셨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며 그래서 구속 됐으며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다는 소식들이다.

네티즌들은 앞다퉈 의견을 올리고 있으며 그것은 크게 비난과 동정으로 나눌 수 있다는 분석이 실려 있다.나는 물론 인터넷을 뒤져서 그 반응들을 볼만큼 부지런하지 못하므로 그러려니 할 뿐이다.

이 때 실망의 대상은 사적인 개인으로서의 그 여자 탤런트에 대한 것은 아니다.예진 아씨라는 이름의 연전에 전국의 시청률을 주도 했던 연속극의 등장 인물에 대한 실망,더 정확히 말하면 허구적 이미지에 대한 실망이다.물론 이런 일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탤런트가 필로폰이나 대마초를 투약한 것도 새롭지 않고,사람들이 실망한 것도 새롭지 않다.그럼에도 어느 때 보다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예진 아씨라는 이름의 이미지와 현실의 인물인 탤런트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도 깊기 때문일 것이다.비록 넌센스에 지나지 않지만.

오래전에 이런 일들,허구적 이미지와 현실을 착각하고 양자가 뒤섞이는 현상들을 보들리야르라는 사람은 시뮬라크라와 내파라는 이름으로 불렀었다.

시뮬라크라란 현실에는 없는 완전한 허구적 이미지를 뜻하고,내파란 그 허구적 이미지가 현실과 뒤섞여 분간할 수 없도록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을 말한다.즉 예진 아씨라는 미디어가 만들어 낸 완전한 허구적 이미지가 현실과 뒤섞이고 사람들은 그러한 허구적 역할이 지속 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 경우 뿐만 아니다.우리가 보는 광고의 대부분은 완전한 허구이고 이미지일 뿐이다.그리고 그 이미지의 힘은 실제로 판매고를 높이며 돈을 벌어주게 한다.때문에 발 빠른 회사들은 벌써 광고에서 문제가 된 탤런트의 사진을 지우고 소송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 뒤 연이어 한 가수 대마초를 피웠다는 혐의로 구속되고 황색 저널리즘은 또 다른 사건이 곧 터질 것이라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북돋운다.

결국 미디어들이 한 개인의 허구적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동시에 여차하면 그것을 파묻을 무덤을 사방에 파놓고 있는 셈이다.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가 된 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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