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12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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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26. 백련불교문화재단

노년의 성철 스님이 세속적인 일과 관련해 무엇보다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불교학 연구다. '세속과 관련됐다'는 말은 불교학 연구의 주체가 스님이 아니라 일반 학자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님들 역시 가능하면 연구를 해야한다는 것이 성철 스님의 입장이다. 성철 스님은 스스로가 불교학에 조예가 깊기 때문에 앞으로 불교학 연구가 어떠해야 한다는 데 대한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한문 번역으로 된 2차 경전이 아니라,인도 고대어인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로 된 원전(原典)연구를 통해서 부처님 뜻에 더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스님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백련불교문화재단'이다.

1980년대 중반 어느 날 저녁 성철 스님께 안마를 해주던 때였다. 성철 스님이 영 불만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요새 불교학자라 카는 사람들이 영 원전 연구에는 관심이 없단 말이야. 큰일이야, 큰일. "

내가 옆에서 듣다 못해 한마디 했다.

"그러면 그 학자들을 불러 연구 좀 하라고 닦달하시지예."

"이놈아,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내 말 들을 사람들이가."

큰스님의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혼잣말처럼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닐 건데 좀 더 열심히 하면 될 걸 가지고 영 원…."

말년이 다가올수록 그런 아쉬움을 말하는 일이 잦아져 내가 머리를 짜 아이디어를 냈다.

"큰스님,'학자들 공부 안한다'고 말씀만 하시지 말고 공부하도록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성철 스님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이 쏘아보았다. 일단 관심을 보였으니 성공이다. 미리 생각했던 계획을 설명했다.

"말로만 공부 안한다 하지 마시고,차라리 백련암 대문 앞에 장대를 세워놓고 거기에 돈주머니를 달아 놓으십시오. 그래 가지고 '누구든지 원전 공부할 사람은 이 돈주머니를 가져가라'고 외치면 그 돈주머니 가지고 싶어서라도 원전 공부할 사람이 생기고,또 백련암으로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

성철 스님이 경청하는 모습으로 미뤄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고 느껴졌다. 성철 스님이 여전히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우짜만 돈주머니를 달아 놓는데."

"원전 공부하는 사람한테는 백련암에서 장학금을 준다고 하십시오. 그리고 실제로 장학금을 만드시고요. 그래도 그 돈을 가져가는 사람이 없으면,그 때 학자들 공부 안한다고 욕하셔도 늦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 돈을 어떻게 만든단 말이고,이놈아."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어 신도들의 협조를 받아서 기금을 적립하면 언제든지 장학금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제서야 성철 스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한번 연구해보라"고 했다. 부랴부랴 서둘러 재단설립을 신청했는데, 몇번 퇴짜를 맞았다. 알고 보니 사단법인은 설립이 쉬우나 재단법인은 좀체로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차일피일 세월만 흐르다가 주변의 도움으로 1987년 10월 말 재단법인 '백련불교문화재단' 설립 인가를 받았다.

"성철 스님의 뜻을 잇는 사업을 펼치겠다"고 다짐하고, 큰스님의 기대까지 모았던 재단이지만 아직 활동은 미약하다. 재단인데 자본금이 2억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단이 모태가 되어 여러가지 사업을 계속하곤 있다. 구체적인 원전연구 지원을 위해 '성철선사상연구원'을 부설연구기관으로 만들어 학자들에게 지원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10집 넘게 『백련불교논집』을 발행해왔으며, 백련학당도 운영해왔다. 최근엔 인터넷문화사업을 펼치기 위해 '성철넷'(http://www.songchol.net)까지 만들었다.

물론 아직 미흡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재단이 설립되어 있었기에 힘이 들어도 큰스님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재단의 힘으로 백련암 장대에 돈주머니를 걸어놓고 큰스님께서 바라셨던 원전 연구자들을 지원하고 싶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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