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토공 통합 3년 노력 무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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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주택공사와 토지공사의 통합과 관련, 국회 건설교통위원회가 입법화 유보 결정을 내림으로써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사업 중 하나가 사실상 물건너갔다.

"29조3천억원이나 되는 대규모 통합법인을 만드는 법안인 만큼 졸속 처리보다 시간을 갖고 판단하자"는 것이 반대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한 국회의원은 "현재 양 공사는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운다고 할 정도로 갈등이 심한 상황이어서 여당이고 야당이고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데다, 괜히 한쪽의 손을 들었다가 정치권까지 유탄을 맞게 된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공.토공 통합 문제는 현 정부 출범 이후인 98년 8월 기획예산처가 세운 '공기업 민영화 및 경영혁신 계획'으로 시작됐다. 택지개발.주택건설로 이원화된 기능을 통합해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실제로 당시 토공은 2005년부터 지방자치단체에서 필요한 택지를 자체 개발하기로 한 터라 기능 축소가 예견된 상황이었다.

주공도 주택보급률이 94%를 웃도는 판에 더 이상 정부 주도로 주택보급사업을 이끌기 힘든 처지였다.

정부의 통합계획은 '통합시 누가 누구를 흡수하며, 어느 쪽 직원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더 많이 희생되느냐"는 밥그릇 싸움에 부닥쳤다.

지금은 통합에 찬성하는 주택공사도 올 초까진 반대했었다. 당시 토공은 판교.화성 신도시 건설 등 일감이 잡혀 있었지만 주택공사는 일이 거의 없어 통합 이후 구조조정의 칼날이 주공에 집중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임대주택 20만호 건설사업을 발표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주택공사는 여기서 구조조정을 유보할 수 있는 명분을 찾아냈다.

그러자 토공은 통합할 경우 조직 내 소수파로 전락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것을 걱정한 나머지 반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여기에 건교부도 올초 공공부문 개혁이 늦어지고 있다는 대통령의 질타를 받고선 '일단 통합부터 하고 보자'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양측이 주장하는 명분도 다르다. "통합법인의 부채가 20조6천억원이나 되므로 이자도 갚기 힘들어지며 이 때문에 먼저 양사의 구조조정부터 해야 한다"는 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오기가 무섭게 "통합되지 않을 경우 현재 3백50%인 토공의 부채비율이 2005년에는 5백60%로 늘어난다"는 또다른 연구용역보고서가 나왔다.

학계도 토목학회와 건축학회로 나뉘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놓았다.

건교부 이재영 토지정책과장은 "토공과 주공측이 여러 가지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인사 문제 등 한국적인 조직문화의 특성이 갈등의 핵심"이라며 "앞으로 상임위가 열릴 때마다 이 법안의 처리를 국회에 계속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전영기.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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