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산책] 'Mr. 바른 생활' 최희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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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희섭이 자신의 사진이 인쇄된 깃발 앞에 앉아 순진무구(?)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는 지난 23일부터 열린 어린이 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이 곳 남해로 내려왔다. 남해=김춘식 기자

'바른 생활 사나이'. 지난 24일 경남 남해의 대한야구캠프에서 만난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 최희섭(25.LA다저스)의 첫 인상이다. 마치 고3 수험생처럼 야구를 제외한 모든 것을 버린 모습이었다. 사진촬영을 위해 훈련장으로 나온 그는 마침 아래위로 새까만 운동복에다 안에 흰색 티셔츠를 받쳐입고 있어 수도사(修道士) 같은 분위기가 짙게 풍겼다. 훈련장 내 카페 여직원이 유자차를 마시겠느냐고 물어보자 그는 지극히 착한 표정으로 "저야 뭐든 주시면 감사하죠"라고 말했다.

최희섭은 없는 것, 안 하는 것이 너무 많다. 홈페이지도 없다. 아직 팬들에게 내보일 만한 스타가 아니라는 생각에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아예 컴퓨터를 하지 않는다. 눈이 나빠져 타격에 지장을 줄까봐서란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농구도 부상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그만뒀다. 술.담배 역시 야구에 방해된다며 여태껏 입에 대지도 않았다. 머나먼 타국 땅에서 동양인 타자로 활동하면서 당연히 느낄 만한 외로움도 없단다. "지금 내 머릿속엔 온통 야구뿐입니다. 외로움을 느낄 여유가 없어요." 같은 이유로 여자친구도 없다.

그래도 거리를 걷다가 미녀를 보면 느낌이 없느냐고 묻자 "이상하게 그런 감정이 없어요. 남들도 특이하다고 그래요"라고 답한다. 이쯤 되면 결혼관도 궁금해진다. "정말 착하고 현명한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다. 이왕이면 예쁜 여자가 좋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예쁘면 얼굴값 한다고 주위에서 그래요. 보통 사람이 볼 때 그냥 편해 보이는 여자가 좋아요"라고 말한다.

목표를 향한 일종의 자기 최면이다. 취미라면 독서와 음악감상.영화보기 정도다. 집에서 조용히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는 경기 전 미국 국가가 나올 때면 가슴에 손을 얹지 않고 눈을 감는다.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을 지킨다는 뜻도 있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최희섭은 "경기를 잘 치를 수 있도록 해달라며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고 털어놨다.

운동선수로서 징크스는 없을까. 있다. 한 번 경기가 잘 풀리기 시작하면 모든 생활을 매일 똑같이 반복해야 한다. 어제 아침 된장찌개를 먹고 점심 때 햄버거를 먹었다면 오늘도 똑같이 해야 한다. 겉옷은 물론 속옷도 안 갈아입는다. 반대로 슬럼프에 빠졌다고 생각하면 생활패턴을 완전히 바꾼다. "어제 먹은 것은 오늘 절대 안 먹는 식이죠."

이 같은 그의 집착.절제.겸손 등은 결국 '메이저리그 정상'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집결된다.

"내년이면 메이저리그 3년차입니다. 이제는 확실한 성적을 못 내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겁니다." 내년 시즌 목표를 묻자 자못 심각해졌다. 내년 목표는 '올해보다 두 배 잘하기'다. 이번 시즌에 15개의 홈런을 쳤으니 내년에는 30개를 치겠단다. 마침 구단으로부터 주전 1루수 자리도 확약받았다고 했다.

원래 육상선수였던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로 종목을 바꿨다. 3학년 때인 1988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가 빙그레를 꺾고 우승하는 것을 본 뒤부터 야구광이 됐고, 외삼촌이 광주 송정초등학교(선동열 삼성 감독의 모교) 야구부로 데려갔다. 당시 1m63㎝의 큰 키에 유연하고 빠른 최희섭을 보고 야구부 감독은 바로 합격점을 줬다. "보따리 싸서 빨리 운동하러 와."

그때부터 야구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충장중 시절 전국대회(1994년)에서 타격상을 받았고, 광주제일고 3년 때인 97년에는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최다 홈런상을 받았다. 최희섭이 메이저리거를 꿈꾼 것은 그해 8월.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미국 선수들을 만나면서부터다. 그리고 2년 뒤인 99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가 됐다.

은퇴한 이후의 꿈은 뭘까. 감독 등 구단 지도자는 싫단다. "그건 어느 한 집단만을 위한 일이잖아요."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쌓은 부와 명예를 밑천으로 야구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상설 야구캠프를 열겠단다. 그렇게 늙도록 야구인으로 살아가겠다고 한다.

남해=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 '빅초이' 최희섭은…

출생:1976년 3월 16일 전라남도 영암

가족:최찬용.양병순 씨의 2남1녀 중 장남

학교:광주 송정초-충장중-광주제일고-고려대 법학과 2년 중퇴(2004년 8월 명예졸업)

취미:독서.음악감상

종교:기독교

신체조건:키 1m96㎝.몸무게 115㎏.발 크기 315㎜.허벅지 둘레 29.5인치

경력:1999년 미국 프로야구 시카고 컵스 입단(마이너리그 아이오와 컵스 소속), 2002년. 9월 한국인 타자 최초 메이저리그 승격, 2003년 11월 플로리다 말린스 입단, 2004년 8월 LA 다저스 입단

연봉:31만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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