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은 아무도 모르게 때와 장소 구별 없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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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몸이 불편한 노스님이 잠을 자다가 물을 마실까해서 시자(侍者)를 불렀습니다. 벌떡 일어난 시자가 물을 받쳐들고 다가설 참에 노스님이 짐짓 묻습니다. '그냥 부르기만 했거늘 누가 네게 물을 떠오라했느뇨?'멍한 표정의 시자에게 노스님은 이렇게 자탄합니다. '수행은 도량(道場) 귀신도 모르게 해야 하거늘, 오늘 밤 나는 내 마음을 들켜버리고 말았으니 내 수행이 아직도 부족한게로구나…' "

26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 전국 사찰의 스님들이 27일부터 석달간 동안거(冬安居, 겨울철 공부)에 들어가는 전날 법정(전 길상사 회주.사진)스님이 결제 법문을 했다. 이날 법문은 최근 행복.용서 등 주로 일반인들을 위한 설법을 했던 것과는 달랐다. 수행의 핵심인 참선이란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알아 달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 저마다 간직한 보리(깨달음의 지혜)의 마음자리를 확인하는 냉철한 공부라는 점을 주로 일깨워줬다.

앞의 예화는 9세기 중국 백장 스님의 사례. 법정 스님은 그 예화를 통해 "입으로만 관세음보살을 외우는" 공염불이나, "나홀로 부처님의 보호를 받겠다는"행위란 참된 수행일 수가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참선은 미리 정해진 시간과 장소가 따로 없고, 선방 문턱에 들어가서야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는 게 이어지는 스님의 말이었다.

법정 스님이 요구한 것은 높은 도력이 아니었다. 이날 법문은 어떻게 하면 일상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구할 수 있느냐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즉 무엇보다 마음이 안정돼야 좋은 수행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부처의 지혜를 간절히 구하되, 지옥의 고통이나 극락의 즐거움에도 분별을 두지 않는 거리낌 없는 마음이 자유, 즉 해탈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법정 스님은 옛 조사(祖師)들이나 부처님의 말씀이 먼 옛날의 일로 들려서는 안 되며, 오늘 여기 내 마음 속의 다짐이 되어야 한다면서 '법구경'의 한 대목을 700명 불자들과 함께 낭랑하게 읽었다. "마음은 들떠 흔들리기 쉽고 억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마음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선과 악을 넘어서 깨어있는 자에게는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으니…."

그 청아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법정스님은 내처 길상사를 떠났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강원도 산골의 오두막에서 '홀로 사는 즐거움'을 위해 다시 떠난 것이다. 한편 지난 6월 펴낸 신간 '홀로 사는 즐거움'(샘터)은 4개월 새 32쇄를 찍으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조우석 기자

*** 전국 2500여 스님들, 90일간 사찰서 수행만

◆ 동안거란?=수행승들이 외부 활동을 단절한 채 여름과 겨울 각각 석달간 수행에만 전념하는 전통적인 수행기간. 석가모니 당시 인도의 유행(遊行) 수행자들이 우기에 땅 속에서 기어 나오는 동물을 밟지 않기 위해 활동을 중단했던 데에서 유래됐다. 한국불교의 큰 특징의 하나로 꼽히는 동안거가 시작되는 오늘부터 해인사·통도사·송광사 등 전국 사찰과 토굴에서 2500여명의 스님이 참선 수행에 들어간다. 한편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최근 다음
과 같은 내용의 동안거 결제 법어를 발표했다. "누가 얻고 누가 잃었는가/만약 이 속을 향하여/바른 안목을 얻는다면/바로 낙처(落處)를 알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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