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수면시계' 빛으로 고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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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상황 1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대학 1년생 김모(20)군의 취침 시간은 오전 2~3시. 하지만 오전 6시면 불을 켜고 집안 청소를 하는 아버지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군의 수면 시계는 건강뿐 아니라 학업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종달새형 수면대의 아버지와 자신의 부엉이형 수면대를 조절할 수는 없을까.

#상황 2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17년째 의류를 파는 서모(57)씨. 상인들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밤 12시에 열던 가게 문을 오후 10시로 앞당겼다. 폐점 시간은 다음날 오후 4시쯤으로 하루 네다섯시간 수면이 고작. 요즘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이웃을 보며 건강부터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 수면 파괴는 건강 파괴=미국의 에디슨이 백열 전구를 발명한 해는 1879년. 그는 인류에게 빛의 문명을 가져다준 위대한 과학자이지만 잠을 뺏어간 장본인이기도 하다. 에디슨 이후 인류의 잠은 평균 1시간 이상 줄었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할수록 최소 8시간 휴식을 취해야 할 인체 생리 시계는 무시당하기 일쑤다. 미국의 경우 교대 근무자 비율은 27%. 여기에다 24시간 컨베이어 벨트처럼 쉬지 않고 돌아가는 밤 문화도 수면 파괴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문제는 수면 조절 실패가 건강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 국제 학술잡지인 '직업과 환경보건'최근호 논문에 따르면 교대 근무자는 낮시간 근무자에 비해 자율신경계의 심장 조절기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대학 연구팀이 4백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이 논문은 야간 근무로 인한 만성 스트레스가 심장 박동을 빠르게 만들어 심장 질환 발병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 오강섭(정신과.수면의학)교수는 "수면 리듬이 자연 리듬과 다를 때는 신경 과민.만성 피로.불안 장애.소화기 질병이나 고혈압.당뇨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작업 능률이나 사고력.판단력을 떨어뜨려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킨다. 예컨대 밤에 3시간만 자는 것은 운전자에게 법정 알콜 농도 기준치의 술을 마시게 하는 것과 같다.

◇ 수면 조절과 건강 챙기기=사람의 생체 시계는 뇌에서 조절된다. 빛을 받으면 뇌 속의 시각 교차 위핵에서 각성(覺醒)스위치가 켜지고, 송과체(松果體)에선 멜라토닌 분비가 줄어들며 서서히 잠에서 깨어난다.

고려대 의대 안암병원 수면장애 클리닉 김인 교수는 "수면 장애로 병원을 찾는 환자 중에는 작업환경을 바꾸지 못해 만성화된 불면증 환자가 많다"고 지적한다. 또 "빛과 수면 생리를 잘 이해하면 짧은 시간이나마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수면 리듬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은 근무.작업 시간대를 바꾸는 것과 자신의 생체 리듬을 조절하는 것으로 대별된다.

▶근무시간 조절법=우선 근무.작업 시간대를 옮길 때는 반드시 시계 방향으로 조절해야 한다. 생체 리듬은 시간을 앞당기는 것보다 늦추기가 훨씬 쉽다. 예컨대 1주일 단위로 낮-저녁-밤으로 3교대 하는 직업이 있다면 시계 방향으로 낮 당번은 다음에 저녁 당번으로, 저녁 당번은 밤 당번으로 옮겨주라는 것.

▶생체 시계 바꾸기=2천5백럭스의 강한 빛으로 뇌의 각성 시간을 옮겨주는 방법이다. 원하는 기상 시간보다 일찍 깨워 한 시간씩 빛으로 자극해 생체 시간을 재조정하는 것이다. 오강섭 교수는 "1m 이내에 형광등 두 세개를 켜놓고 책을 읽는 등 2~4일 정도만 원하는 시간에 빛에 노출하면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취침 시간 늦추기=광선 치료보다는 실행이 어렵지만 잠드는 시간을 조절하는 방법도 있다. 원하는 시간까지 매일 3시간씩 잠드는 시간을 늦추는 것. 예컨대 오전 1시에 취침하는 학생이 오후 9시에 잠들기를 원한다면 잠드는 시간을 첫째날 오전 4시, 둘째날은 오전 7시, 셋째날은 오전 10시에 자는 식으로 오후 9시까지 늦춰가는 것이다.

▶아침 퇴근땐 빛을 피하라=아침에 퇴근하는 근무자들을 위한 오 교수의 조언. 가능하면 눈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줄여주기 위해 선글라스를 끼고 퇴근하고, 집에서도 커튼으로 빛을 차단하라는 것.

글=고종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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