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서핑차이나] 또 고질병 도진 중국 언론의 한국 때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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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한 편의 자료를 보니 한국 서울대학 역사과 교수 김병덕이 이백은 한국의 후예임을 고증했다고 한다. 게다가 당(唐)왕조의 많은 중요한 시인들, 예를 들어 이상은(李商隱), 이하(李賀), 이섭(李涉) 등 ‘이’씨 성을 가진 시인들이 사실은 모두 한국인의 후예라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김병덕 교수는 이미 UN관련 기구에 중국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한국문화를 표절했다는 제소장을 제출했으며, 더불어 당시를 한국의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신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간쑤르바오(甘肅日報)’ 5월 14일자 7면에 실린 ‘이백은 절대 한국인이 아니다(李白幷非韓國人, 사진)’라는 기사의 첫 문장이다. 기자 이름은 왕위(王鈺)다. 기명 기사가 많이 검색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갖 입사한 신참 기자로 보인다.

이번엔 이백(李白)이 도마에 올랐다. 한국측 왜곡의 주인공은 김병덕(金秉德). 직함은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 물론 서울대학에 이런 이름을 가진 교수는 없다. 이 정도면 기사가 아니다. 완전한 소설이다.

#2. “한국인이 또 손을 썼다! 그들이 이번에 빼앗은 것은 ‘줄다리기’다. 줄다리기는 중국에서 이미 2000여년 동안 전해져 내려온 유산이다. 한국의 당진군이 세계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신청하려한다. 하지만, 후난(湖南)성 류양(瀏陽) 출신 여인이 나서 다방면의 조사를 거쳐 줄다리기의 기원이 중국 춘추시기 초(楚)나라 땅의 노반(魯班)이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만이 문화유산 신청 자격이 있다.”
중국 산둥(山東)성에서 발간되는 ‘치루완바오(齊魯晩報)’ 5월 15일자 A16면의 톱기사 ‘한국이 줄다리기를 빼앗아 세계문화유산에 신청하다’라는 기사의 첫 문장이다. 이 기사 밑에는 ‘어떤 중국 문화들이 한국에 빼앗겼나’라는 제목으로 신화, 명인, 도교, 한자, 명절, 발명, 중의, 풍수가 모두 한국에게 빼앗겼다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부산 부경대에 유학와 역사를 전공하는 후난성 출신 여학생 슝멍샤가 이 사실을 발견하고 바로잡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것이 기사의 골자다.

#3. 인민일보사도 멋드러지게 호응했다. 먼저 환구시보가 이들 기사를 인터넷에 보기 좋게 옮겨 실었다. 이어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운영하는 인민망도 주요 기사란(사진)에 '한국이 줄다리기를 빼앗아 문화유산 신청', '이백은 한국인?', '어떤 문화가 한국에 도둑맞았나' 세 기사를 한줄에 번듯이 실어 중국 네티즌들을 ‘선무’했다.

중국이 왜 이럴까?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광둥에서 발간되는 ‘신콰이바오‘가 ‘쑨원은 한국인’이라는 오보를 냈다가 중앙정부로부터 시정조치를 명령받고 해당 기자가 처벌 받은 사실을 벌써 까맣게 잊은 듯하다. 이번의 이백과 줄다리기 사건은 과거와 패턴이 매우 똑같다. 한국과 껄끄럽고 미묘한 시기에, 지방 신문에서, 중국의 민족감정을 자극해, 한국 때리기에 나서면, 중앙 매체의 인터넷 사이트가 그 기사를 퍼나르는 방식이다. 중국 네티즌은 분노하고 한국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런 소모적인 문화분쟁을 일으키면 누구에게 이로울까? 기사를 보도한 중국 매체들은 자극적인 내용으로 판매 부수나 클릭 수가 잠깐 늘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중국 네티즌들이 댓글에

“환구망은 어떤 한국인이 누구누구는 한국인의 후대라고 했다는 개소리를 조작하지 말길 희망한다. OK? 사람이라면 이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모두 알꺼다, 환구망의 이러한 조작은 중국인이 제발저린다고 볼 수 있다고!” 2010-05-14 17:47 環球網友
“이거 가짜 보도지, 중국인이 꾸며내서 올린거잖아.” 2010-05-14 18:09 環球網友

라고 올려 놓듯이 이런 기사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허위 왜곡 보도다. 이런 식으로 한·중 국민 감정이 상하면 그 폐해는 한국만 입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차이나 디스카운트’가 더욱 심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국 몫이 된다. 중국의 문화가 중국인들 만의 것임을 주장하고 싶으면 왜 전 세계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으며 공자학원을 세우고 중국 문화를 보급하려하는지 도대체 알 수 가 없다. 물론 한국에 일부 급진적인 민족주의자들이 지나치게 국수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책임있는 언론 매체에서 이제 그러한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이번 보도에 대해 중국 책임 당국은 엄중한 사후 조치를 취해야 한다. 벌써 한국의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서울대학교는 허위보도한 중국 언론에 대해 정식으로 손해보상을 제기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제 한국인들도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태세다.

또한 중국의 극 소수의 의견에 불과하겠지만 과거 중국의 조공국이었던 오키나와(류큐)의 주권이 공식적으로 중국에 속한다며 일본과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되찾아 와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중국의 한 군사관련 사이트에 실렸다. 이런 논리는 과거 중국에 조공을 했던 한국, 일본, 베트남을 비롯해 서역의 수 많은 국가들을 상대로 중국이 전쟁을 벌이겠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최근 중국이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서 ‘뿌리찾기’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이백은 한국인’ 기사도 간쑤일보 문화면에서 이백이 간쑤 지방이 고향인 조상임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관련 기사의 하나로 실린 것이다. 그러나 내 지방 조상찾기가 지나치게 과열돼 최근에는 소설 반금련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서문경의 고향을 놓고 몇몇 지방정부 사이에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허구의 소설에 나오는 허구의 주인공에게 고향이 있을리 없다. 그것을 놓고 다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실소를 금할 수 없는 행태다.

중국은 G2라는 칭호를 거부하면서 이런 프레임을 미국의 ‘중국, 띄워 죽이기(捧殺中國·봉살중국)’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G2 칭호를 인정하건 하지 않건 중국은 대국이다. 이웃국가와 불편하게 지내는 대국이 글로벌한 이슈를 다루는 책임있는 국가로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중국 정부가 더이상 한중관계에 해악을 끼치는 ‘***는 한국인’이란 식의 카더라 통신이 중국 내에서 유통되지 못하도록 책임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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