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션와이드] 아흔아홉 구비길 '대관령' 뻥 뚫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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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대관령 주변엔 더이상 교통 체증이나 두절은 없다-.

피서철 뙤약볕 아래 5∼6시간이나 차안에서 갇혀 있으면서 “다시는 이 길을 찾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 결국 다시 찾아 와야만 했던 길.겨울에 폭설을 만나 하루종일 꼼짝달싹도 못하고 추위에 떨면서 긴급 공수된 빵과 음료수로 허기를 달랬던 고행(苦行)들.

흔히 아흔아홉 구비길로 불리던 영동고속도로 대관령구간을 넘나들었던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이면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만한 애환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득한 기억 속의 추억으로만 간직하게 됐다.

오는 28일이면 구절양장이었던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에 왕복 5차선의 새로운 길이 뚫리기 때문이다.

1996년 12월 착공해 5년만에 개통되는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확장구간은 21.9㎞.개통을 앞두고 미리 달려본 새 길은 과연 지도를 바꿀 만큼 전혀 딴 세상의 도로 같았다.

기존의 대관령 정상에서 남쪽으로 2.5㎞쯤 떨어진 능경봉에 굴을 뚫어 만든 대관령 1터널을 들어서 완만한 구배와 커브길을 달리기 시작했다.평균 9%였던 구배를 5% 이하의 완만한 내리막길로 낮추고 30m였던 곡선반경도 8백m 이상으로 직선화해 대관령 고갯길을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바닥으로부터 80∼90m 높이에 설치된 성산 1 ·2교를 지날때는 마치 구름위를 떠다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15분쯤 달리자 차는 어느덧 종점인 강릉 인터테인지로 들어서고 있었다.평소 45분 정도 걸리던 이 구간의 운행 시간이 3분의 1로 단축된 것이다.

특히 완만한 구배와 커브길,하행 2차선·상행 3차선의 넓은 길이어서 교통량이 많은 관광 성수기에도 차량 흐름은 시원스럽게 이어질 것 같았다.

도로 곳곳에 액체 분사식 결빙방지 시설과 제설작업을 위한 자재창고 등 신속한 제설 작업을 위한 시설도 마련돼 있었다.

한국도로공사 영동건설사업소 윤문호(48)공사부장은 “앞으로 대관령 구간에서 교통 두절이나 교통 체증이 발생했다는 뉴스는 사라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대관령 고개를 오르내리며 잔땀을 뺏던 고행은 사라졌지만 동해바다의 절경을 굽어보는 기쁨이 사라진 것은 아쉬움이었다.

이처럼 시원스럽게 뚫린 대관령 구간에 대한 운전자들의 감회는 시원함과 섭섭함이 교차하고 있다.

지난 1월 7일의 폭설로 부인과 어린 자녀 등 일가족 3명과 함께 대관령에서 26시간 갇혀 있었던 조철희(38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씨는 “배고프다며 보채는 아이들과 함께 고속버스에 갇혀 있었던 당시 고생이 나중에는 추억으로 남았다”며 “넓은 길을 놔두고 일부러 옛 길을 가게 되지 않을 것 같아 섭섭한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관광객 성은경(34 ·여 ·경기도 용인시)씨는 “길이 막혀 기다리다 지친 관광객들이 도로변에서 라면으로 허기를 때우거나 아예 잠을 청하기도 했던 추억은 대관령에서만 벌어질 수 있었던 일이다”고 말했다.

이 구간 공사는 해발 8백65m인 대관령의 험한 산등성이를 따라 진행된 만큼 국내 고속도로 역사상 최대의 난공사로 기록됐다.

덕택에 많은 기록도 남겼다.전체 구간의 절반이 넘는 11.22㎞구간이 교량(33곳)및 터널(7곳)등 구조물로 되어있다.공사 구간 대비 공사 기간과 공사비면에서도 단연 국내 고속도로 중 최대다.

다른 고속도로의 경우 3년 정도면 준공할 수 있으나 대관령 구간은 5년이 꼬박 걸렸다.공사비도 다른 지방 고속도로에 소요되는 ㎞당 2백억여원 보다 1.5배 많은 3백50억원이 투입됐다.

전체 공사비는 7천5백60억원.1조9천8백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된 원주∼강릉구간(1백9.9㎞)과 비교할 때 공사 구간은 20%에 불과하지만 공사비는 38%나 사용한 셈이다.

전 구간에 가로등(8백13개)을 설치한 곳도 대관령 구간이 처음이다.기후 변동이 심한 지역 특성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절벽이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교량의 가들레일과 중앙분리대의 높이를 당초 90㎝에서 1.27m로 높였다.

하지만 완만한 내리막길이 20여㎞나 이어져 하행선에서의 차량 추돌 및 충돌 사고의 위험은 그만큼 높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겨울철 노면이 얼어붙거나 안개가 낄 경우 연쇄 추돌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과속을 할 경우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도로공사 尹부장은 “도로가 좋아진 만큼 사고의 위험성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며 “안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차량 운전자들이 기준 속도를 준수하는 등 교통질서 의식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대관령=홍창업 기자

*** 대관령은

대관령은 강원도 강릉시와 평창군의 경계에 있으며 영동과 영서를 잇는 태백산맥의 관문이다.

총 길이는 13㎞로 고개의 구비가 99곳에 이른다.한랭하고 비가 많이 내리고 남한에서 서리가 가장 먼저 내리고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평창∼강릉길을 ‘약 나흘간 해를 볼 수 없는 노정’이라고 표현했으며 김시습도 ‘조도(鳥道 ·나는 새도 넘기 어려운 험한 산속의 좁은 길)’라고 칭했다.

1800년대 이병화라는 사람이 한겨울에 고갯길을 넘다가 사람이 얼어 죽는 것을 막고 여행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대관령 길목에 주막을 설치했다는 기록도 있다.

비포장 국도를 따라 승용차로 아홉시간 걸리던 서울∼강릉간이 1975년 왕복 2차선 고속도로로 개통되면서 4시간으로 단축됐고 이번에 왕복 5차선 도로로 확장돼 2시간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특히 대관령 구간의 확장 개통으로 연간 8백17억원의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기존의 대관령길은 새 노선의 확장 개통과 동시에 지방도로 전환돼 순수 관광도로의 역할을 맡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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