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총재, 영수회담 '없던 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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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러시아를 방문 중인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22일 슬라비얀스카야 호텔에서 현지 교민들과 리셉션을 하던 중 긴급 보고를 받았다."국내 일부 신문들이 총재가 출국에 앞서 한 기자회견에서 영수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보도했다"(權哲賢대변인)는 내용이었다.

李총재는 "무슨 소리냐.'못 만날 이유가 없다'는 원론적인 얘기가 어떻게 영수회담을 하자는 것으로 나가느냐"며 "당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었나"고 질책했다. 權대변인은 "총재의 출국 인사말에도 (영수회담은)단 한마디 없었다"며 진화에 나섰다. 이렇게 해서 출국에서 러시아 도착까지 불과 10여시간 만에 영수회담은 '없었던 일'이 됐다.

영수회담에 대해 李총재와 한나라당이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신승남(愼承男)검찰총장과 신건(辛建)국정원장 퇴진 압박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權대변인은 "국정 쇄신 요구에 대한 결과도 지켜보지 않고 영수회담을 할 경우 愼.辛 사퇴 문제가 흐지부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배(金杞培)사무총장은 "金대통령이 유럽 방문을 위해 출국하는 다음달 2일 전까지 愼총장과 辛원장을 사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무성(金武星)총재비서실장은 "검찰.국정원의 인적 쇄신과 시스템 개혁이 먼저 이뤄진 뒤에야 영수회담 얘기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李총재 측근들은 "총재가 출국에 앞서 김대중 대통령을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愼.辛 해임의 결단을 촉구하는 의미가 담겼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측근은 "'두 사람 문제를 빨리 매듭지으면 영수회담을 통해 국정에 적극 협조할 수 있다'는 뜻을 대통령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金대통령이 검찰과 국정원에 대한 쇄신을 단행한다면 연내에 영수회담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당직자 회의를 열어 진승현씨의 선거자금 살포설 등이 愼.辛 사퇴 요구를 희석시키려는 의도에서 유포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하고 두사람의 해임을 계속 밀어붙이기로 했다.

모스크바=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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