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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 10여명 '뿌리찾기' 작업 나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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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비구니(比丘尼.여자 스님)만큼 잊혀진 존재도 드물다. 세속을 떠난 승려라는 이유로, 특별히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전통이 강한 절집의 관행에 따라 항상 비구(比丘.남자 스님)에 가려 그 존재를 드러내기 힘들었던 존재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고 있다.최근 비구니 스님들이 늘어나 전체 승려의 절반을 차지하게 됐다. 일부 비구니 스님들은 팔경법(八敬法.비구니는 비구를 존경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설 정도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비구니 스님들이 스스로의 뿌리를 찾아 나섰다. 비구승단의 일부로 묻혀온 비구니의 역사를 찾고자 여승 10여명이 모였다. 경기도 김포, 스님들만 다니는 대학인 승가대학의 교수회관인 정진관에 자리잡은 '한국비구니연구소'(소장 본각.031-980-7775)가 지난달 마련한 그들만의 둥지다.

본각(本覺.50)스님은 승가대 교수며, 재학 중인 비구니 학인(學人)스님들이 서클활동하듯 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인스님은 깎은 머리가 파르스름한 젊은 스님인데, 모두가 사찰의 전통교육기관인 강원(講院)을 마친 재원들이다.

10여평 됨직한 한 칸은 자료실이고, 다른 한 칸은 세미나실 겸 사무실. 지난 9월 승가대가 서울에서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공간이 생겼다. 온돌방식으로 개조한 사무실 한가운데 큰 탁자를 두고 비구니 스님들이 둘러앉아 한문으로 쓰인 고전과 경전들을 나눠 읽고 토론한다. 한참을 뒤져야 겨우 비구니와 관련된 한 조각 흔적을 찾을 뿐이지만 비구니 스님들의 부릅 뜬 눈은 맑다.

"누구보다 철저한 수행의 발자취를 남기고 간 비구니 스님들의 공덕을 쫓다보면 신심이 절로 생깁니다. 제가 그런 발자취를 찾아내 알려야 다른 스님들이나 후학들이 또 배우고 쫓아올 것 아니겠습니까. 비구니의 '니(尼)'자만 봐도 가슴이 뛰고, 그럴 때마다 연구소 활동에 참가한 보람도 커지네요."

1999년 모임이 태동할 무렵부터 참여해온 효봉 스님이 어느 고승의 비문(碑文)을 읽다가 "법회에 비구니가 수백명 참석했다"는 대목을 짚는다. 지난 학기부터 금석문을 수집해 함께 해독해 왔다. 지난해 여름 방학엔 비구니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노스님들을 일일이 찾아가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가장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던 기억이라고들 말한다.

"노스님들 찾아다니다 맞기도 무지 맞았지요. 왜 수행은 안하고 쓸데 없이 돌아다니냐고 혼내는데 참…."

"아무리 설득해도 인터뷰 안하는 거예요. 평생 수행해온 스님들일수록 '나는 보잘 것 없는 존재'라며 숨으려고 하셔요. 그러면 상좌 스님을 먼저 설득해 며칠이고 기다려야죠. 뭐 다른 방법이 있나요."

"용맹정진(勇猛精進.잠 안자고 참선 수행하는 것)하다 잠 쫓으려고 눈밭을 걷는데, 눈이 포근한 솜이불로 보이더라고 하더군요. 그런 얘길 들으니 제가 어찌나 부끄러운지."

낯이 좀 익자 비구니 스님들이 여러 경험과 소감을 털어놓는다. 본각 스님은 99년 비구니들의 인명마저 정리되지 않은 현실을 보고 모임을 만들었다. 보금자리도 마련했으니 자료정리를 본격화, 내후년께 학술발표회를 열 계획이다. 『비구니사(史)』 『비구니인명사전』발간은 장기 목표. 당장 급한 목표는 "대학당국으로부터 정식인가를 받아 공식 지원을 받는 일"이라고 한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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