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문경 '산들모임' 산악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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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번 주 ‘기자가 만난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닌 한 무리의 산꾼이다.문경시의 산행 동호회인 ‘산들모임’은 산골의 길잡이를 자처한다.

문경은 옛적 험준한 새재(鳥嶺)를 넘어 과거급제 등 서울 ‘뉴스’를 맨 먼저 듣던 영남의 관문이었다.산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전체 6백80㎞의 백두대간 중 전국에서 가장 긴 구간(1백10㎞)을 품은 고장이다.

1992년 10여명의 지역 산꾼들로 시작,이제는 50여명으로 불어난 산들모임은 10여년 전부터 ‘작지만 큰’ 일을 벌여 왔다.이 고장을 지나는 백두대간 봉우리마다 자연석 표지석을 세워가는 작업이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 고장 만이라도 제대로 된 정상표지석을 보고 가게 하자는 뜻에서 시작했습니다.”

박진희(朴鎭熙 ·45 ·문경시청)산들모임 회장은 그간 산행을 하면서 “표지석이 없어 힘들게 오른 산이 무슨 산인지 몰라 답답했다”고 했다.또 표지석이 있어도 오히려 자연을 훼손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늘 거슬렸다”고도 했다.시멘트 기둥에 산 이름을 새긴 것 또는 헬기로 날랐음직한 거대한 정상 표지석들이다.

산들모임은 94년 10월 백화산을 시작으로 문경 백두대간 구간 중 1천m 이상 봉우리에 자연석 정상표지판을 차례차례 세워 나갔다.

제대로 된 표지석 세우기를 위해 몇가지 원칙도 세웠다.

표지석과 받침돌의 재질은 반드시 그 산의 골짜기에서 구한 자연석으로 하되 글씨도 그 산 아랫마을의 어른들에게서 받았다.글씨 새기기가 끝나면 해발 1천m 이상 봉우리까지 받침돌을 포함 거의 1백50㎏에 이르는 돌덩이를 나르는 작업이 기다린다.

보통 회원 40여명이 참가해 4개조로 나눠 목도를 이용해 교대로 운반한다.여기엔 회원 가족들도 참가해 아이들은 막걸리통을,부인들은 새참을 준비해 함께 산을 오른다.

박창희(朴昌熙)산들모임 총무이사는 “이 일을 하면서 우리 조상들이 막걸리 힘으로 힘든 농사일을 견뎌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산들모임은 지난 11일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 문복대(1천74m)에 표지석을 세움으로써 일단 1천m급 봉우리에 이름표를 다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해마다 하나꼴로 백화산 ·대미산 ·문수봉 ·장성봉 ·주흘영봉 ·조항산 ·대야산 ·문복대 등 모두 8개를 세운 것이다.

내년부터는 1천m 이하급 산들로 작업을 옮겨간다.한동수(韓東洙)부회장은 “산꾼들이 한번씩은 올라볼 만한 산도 문경에 63개나 돼 표지석 세우기는 산들모임의 대를 잇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들모임은 ‘해맞이 떡국잔치’로 전국의 산악인에게 널리 알려진 산악회이기도 하다.

새해 해맞이 산행을 위해 전국의 산꾼이 모여드는 주흘영봉에서 해마다 5백명 분의 떡국을 준비해 기다린다.찬바람을 뚫고 정상에 오른 산꾼들은 “평생 이렇게 맛있는 떡국은 다시 못 먹을 것”이라며 감사의 편지를 보내오기도 한다.

97년 경북산악회의 에베레스트(8천8백48m) 원정대에 참가하기도 했던 산들모임은 그간의 산행을 바탕으로 시와 함께 ‘문경의 명산’을 펴내 산행 안내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정기환 기자

◇‘산들모임’은‥

▶1992년 9월 창립

▶ 94년 백화산 정상표지석 설치

▶ 96년 대구경북산악연맹 특별공로상 수상

▶ 97년 에베레스트·칸텡그리 원정대 참가

▶ 97년 경북도지사기 등반대회 최우수상

▶ 98년 주흘산 영봉 정상표지석 설치

▶ 99년 문경시와 함께 ‘문경의 명산’ 발간

▶2001년 경북산악연맹 우수단체상 수상

▶2001년 문복대 정상표지석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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