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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BOOK] 과학사 이끄는 ‘거인 집단’ 영국 왕립학회 35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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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거인들의 생각과 힘
빌 브라이슨 편집
이덕환 옮김
까치, 512쪽, 2만5000원

영국 왕립학회(Royal Society)는 올해로 창립 350주년을 맞았다. 왕립학회는 그야말로 과학을 통해 근대의 역사를 만든 단체다. 350년 동안 고작 3500명만이 왕립학회 회원이었다. 하지만, 이 적은 수의 거인들이 과학 발전을 이끌었다. 뉴턴·프랭클린·로크·다윈·와트·패러데이 등등 세상을 바꿔놓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과학의 여명기인 근대에 설립된 이 학회는 현대과학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과학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이 책은 이 학회에서 지난 350년 동안 과학을 ‘과학적으로’ 조직한 근대 지성인과 그들의 활동을 기리고 있다. 유명한 과학저술가인 리처드 도킨스를 포함한 22명의 내로라하는 과학 지성인이 필자로 나섰다. 이들은 과학사를 만든 왕립학회 회원들의 활약상을 되새김질하면서 과학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역사를 기록하는 날개 달린 전차에 탄 역사의 신 클리오. 350살이 넘는 영국왕립학회가 여전히 존재하고, 과학도 역시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정을 증언하는 듯하다. [까치 제공]

도킨스는 이 책에서 찰스 다윈을 다뤘다. 다윈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여 자연선택과 진화와 같은 자기만의 이론을 완성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과학이 관찰과 기록, 그리고 논리적인 설명에다 여러 가지 업적의 축적에 의해 발전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식으로 22명의 필자는 각자 과학의 여러 측면을 각각 분석하고 있다.

미국 듀크대학의 토목공학 및 역사학 교수인 헨리 페트로스키는 금문교를 비롯한 거대한 구조물이 기술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했던 엔지니어들의 집단 지성을 주제로 잡았다. 그런 대형 구조물은 멋진 외관을 창작한 건축가보다 과학기술적으로 그런 구조가 가능하도록 설계한 엔지니어들의 업적이라며, 그들의 이름과 역할을 찾아 기억하자는 제안을 한다.

재미난 것은 이 책에서 간략히 소개하는 왕립학회의 역사다. 탄생은 조촐했다. 1660년 11월 젊은 학자 크리스토퍼 렌의 천문학 강연에 모였던 10여 명이 유용한 지식을 축적하기 위해 단체를 만들자고 의견을 모으면서 생겨났다.

이 단체가 근대와 현대 서구 과학의 중심에 서게 된 바탕에는 ‘합리적인 운용’이다. 이들은 세계 최초의 과학저널을 발행하고 오늘날에도 유용한 ‘동료 평가제도’를 도입해 객관성을 강조했다.

놀라운 일은 이 학회가 처음부터 국제화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저널 편집에 초기부터 바다 건너 독일인이 참여했다. 왕립학회는 영국에 국한되지 않고 서구 전체에 문을 연 덕분에 서구 과학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해줬다는 분석이다. 개방의 힘이다. 왕립학회는 과학의 객관화와 민주화에도 기여했다. 힘과 명예를 가진 명문가 출신이 아니어도 과학적 성실성과 실험에서의 창의성만 확보된다면 누구도 과학에 기여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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