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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신협관련 엉터리 법 개정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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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경제의 최대 과제는 구조조정의 추진과 시장경제의 정착이다. 시장경제의 정착을 위해서는 각 경제 주체의 도덕적 해이를 차단할 수 있는 법.제도의 선진화가 중요하다.

도덕적 해이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지만 가장 심각한 행태는 '성공자득 실패타실(成功自得 失敗他失)'의 구조에서 일어나는 무모한 도박이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의 된서리를 맞고서야 도덕적 해이를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엉터리 법.제도로 인해 신용협동조합의 한심한 도덕적 해이가 계속되는 현실을 보면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현재 신협은 네가지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는 신협의 부실에 대해 책임지는 주체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신협은 원래 공동 유대에 속하는 사람들이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결성하는 조직이다. 그래서 신협은 법적으로 비영리 법인이고, 임원은 비상근.무보수.명예직이다.

공동유대에 속해 서로 잘 아는 사람들간에는 도덕적 해이의 소지가 크지 않으므로 부대사업으로 신용사업이 허용되고 있다. 그런데 1997년 12월 국회는 공무원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의원 입법으로 예금자보호법을 개정해 조합원의 예.적금은 물론 출자금까지도 예금보호 대상에 포함시켰다.

자본금도 없이 위험이 따르는 사업을 하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금융기관을 만들어놓은 셈이다. 결국 단위조합에 공적자금을 이미 2조원이나 쏟아 부었다. 부실규모는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둘째는 신협중앙회가 고금리로 조합의 자금을 유치해 무모한 증권투자를 한다는 사실이다. 무분별한 규제완화 바람에 편승해 국회는 99년 2월에 중앙회의 증권투자 규제를 없앴다. 중앙회는 과거의 누적적자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전문성도 없으면서 무모한 도박을 하다가 적자만 더 증가시켰다.

셋째는 조합과 중앙회의 지배구조가 모두 지극히 부실하다는 사실이다. 5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중앙회에서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비상근.무보수.명예직이라니! 아울러 외부감사도 받지 않는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넷째는 신협이 사실상 금융기관의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상 금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금융감독원의 조치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신협은 공동유대의 종류에 따라 직장 신협.단체 신협.지역 신협으로 구분한다.이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신협 전체의 60%를 차지하는 지역 신협이다. 파산한 신협의 90%는 지역 신협이다.

이웃 사람들끼리도 서로 잘 모르는 도시에 주로 거주하는 시대에 지역 신협은 그 존재논리가 지극히 약하다.그런데도 일부 정치인들은 지역 신협을 지역구 관리의 수단으로 이용하며 그 방만한 경영을 방치하고 있다. 일부 신용없는 신협 임원과 정치인이 서로 협동해 일으키는 지역 신협의 문제는 후진적인 정당 지배구조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신협과 관련한 엉터리 법을 즉시 개정할 것을 국회에 촉구한다. 신협은 비록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고전적이고 구조적인 도덕적 해이가 응축된 경우다. 국회는 2조원의 소를 도둑 맞고도 정녕 외양간 고치기를 주저할 것인가□ 한국의 금융감독시스템은 중요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박상용 교수 <연세대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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