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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젊은이들 독서삼매경 빠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소피 라이언은 16세 여고생.학교 크로스컨트리 팀의 공동리더이자 미니스커트를 즐기고 데이트라면 사족을 못쓰는 이 발랄한 신세대가 토요일 밤에 하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정답은 허먼 멜빌의 고전읽기.

“전 지금 19세기 미국 문학과 열애 중이에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지가 지난 9일 실은 ‘누가 책을 읽는지 보라’의 머리부분이다.

다음은 이 기사의 요약.

최근 미국의 25세 이하 계층,다시 말해 10대 청소년들과 대학생들 사이에 거센 독서 열풍이 일고있다.전국 서점 집계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젊은층 독서인구는 20%에서 최고 75%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장조사 기업인 입소스-NPD는 25세 이하 계층의 도서소비가 지난 4년간 10% 이상 증가했다고 분석했다.이것은 『해리 포터』류의 아동물 이나 교과서는 제외한 수치다.

또 다른 리서치 기업인 레저트렌드는 이들 계층의 25% 이상이 자신의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는 지난해보다 10% 늘어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쇼파홀릭의 고백』같은 흥미 위주의 단행본에서부터 제인 오스틴,제2의 제임스 조이스라 불리고 있는 자서전작가 데이브 에거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성을 과시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출판 관계자들은 이런 열기가 할리우드 스타를 내세운 끼워팔기나 디스코장 이벤트 같은,결코 문학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마케팅 전략과 책을 많이 읽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수험생들의 강박관념 등에 힘입은 바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실제로 위노나 라이더나 『툼 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를 표지 모델로 내세운 책들이 ‘대박’을 터뜨린 것이 좋은 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이들 계층의 취향 자체가 바뀌었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훨씬 진지하고 학구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1992년부터 97년 사이 X세대들은 ‘문학’대신 ‘웹’을 선호했다.

하지만 그 후 ‘닷컴 판타지’라는 거품이 사라지면서 첨단 기술보다는 기초학문인 문학과 예술에 대한 근원적인 호기심이 오히려 이들 세대를 유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X세대 그 이후’에 대한 책을 탈고한 사회학자 윌리엄 스트라우스는 “이 현상이야말로 MTV문화에 대한 반동”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뜻밖의 대목을 맞은 대형서점과 출판사들은 ‘작가와의 대화’같은 이벤트를 대형화해 젊은층 손님끌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디스코 장이나 심지어 토플리스 바에서 저자사인회를 개최하는 것도 예사다.또 10대들이 관심있는 소재를 감각적으로 그려낼 만한 10대 작가를 모시기에 혈안이 되기도 한다.

이에따라 출판 비즈니스가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기본적으로 젊은 독서인구가 늘어간다는데 대한 미국의 여론은 매우 우호적이다.“기왕이면 고전도 좀 읽어라”는 노친네들의 주문까지 들어준다면 당장 업어주기라도 할 태세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지금도 책을 읽고 있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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