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크고 임금 싸고…일본 '차이나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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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도쿄=남윤호 특파원] 일본이 제조업 국제경쟁력 정상 자리를 중국에 넘겨줄 판이다.

19일 일본 국제협력은행(JBIC)에 따르면 일본 제조업체들의 중국 내 생산거점은 지난 8월 말 7백72개로, 1년 새 1백여곳이나 늘어나면서 처음으로 북미지역(6백92개)을 추월했다.

이번 조사는 해외 자회사를 3개 이상 지닌 기업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중소기업까지 포함한 실제 중국 내 생산거점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3년간 진출이 유망한 지역으로도 중국이 1위에 올랐고, 미국.태국.인도네시아.인도가 2~5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베트남.대만에 이어 8위였다.

중국이 매력적인 이유로는 ▶내수시장의 잠재력이 크고▶값싼 노동력을 구하기 쉬운데다▶원.부자재도 싸게 조달할 수 있다는 점이 꼽혔다. 국내 경기 위축으로 판로가 좁아진 일본 기업들에 중국은 생산거점인 동시에 판매기지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의 기술력이 강해지면서 연구개발 거점을 중국으로 옮기거나(NEC.마쓰시타) 첨단 정보기술(IT)제품의 생산을 중국에서 시작하는 기업(소니.히타치)들도 나오고 있다.

반면 성장이 둔화된 EU.중남미 지역에 대해서는 일본 기업들이 신규 투자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또 일본 제조업체의 해외생산 비중도 올해 23%로 커져 JBIC가 조사를 시작한 198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져 2004년엔 3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와 관련, 경제산업상 자문기관인 산업구조심의회는 중국에 제조기지를 빼앗김에 따라 2006~2010년 일본의 평균 성장률은 0.5%에 머물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일본 내 실업률은 5%대를 유지하는 등 국내 고용사정도 더욱 나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의 제조업이 온통 중국에 빨려들어가고 있다는 위기감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심의회는 19일 산업공동화 대책회의를 열고 일본만의 특화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중국에 내줄 것은 내주되 독자적인 경쟁력을 지닌 고부가가치 신산업을 개척하자는 전략이다. 구체적으로 ▶디지털 콘텐츠▶고령자 의료서비스▶로봇▶정보가전▶건강식품▶고속도로 교통시스템▶저(低)공해차 등 14개 분야를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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