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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러시아 끌어안기 잰걸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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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계기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발트해와 동유럽에서 대립해왔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러시아의 관계에 일대 지각변동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테러 응징을 위한 군사작전과 국제연대를 위한 외교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지난 주말 1997년에 시작된 나토-러시아 합동 자문회의를 월 2회 소집하는 정책회의로 격상시키자고 제안했다.

블레어 총리의 제안대로 되면 러시아는 나토의 공동안보정책 결정 과정에 19개 나토 회원국과 거의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29일 런던에서 열리는 영국.프랑스 정상회담에서는 이 문제가 집중 논의될 예정이다.

나토-러시아 관계의 지각변동 조짐은 9.11 테러 전부터 있어 왔다. 유럽은 지난 3월 유럽연합(EU)정상회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초대했다.

러시아를 유럽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파트너로 받아들인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푸틴 역시 나토가 군사기구적 성격에서 벗어나 보다 정치기구화한다면 나토의 동진(東進)정책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전향적 입장을 밝혔다.

유럽과 러시아의 상호접근 움직임은 미국의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다소 제동이 걸리는 듯했지만 9.11 테러로 상황이 급반전됐다.

테러 발생 이후 러시아는 미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또 테러 관련 정보를 서로 주고받는 등 양측은 척척 손발을 맞추고 있다.

지난주 미국을 방문한 푸틴을 부시는 극진히 대접했다. 미.러 관계의 급진전으로 미국과 함께 나토의 한축을 떠맡고 있는 유럽이 러시아 끌어안기를 가속화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나토의 정책결정에 발언권을 행사하려는 러시아와 국제테러라는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는데 러시아를 끌어들이려는 유럽의 의지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넘어야 할 산들도 많다. 우선 러시아의 희망과 달리 대다수 나토 회원국들은 나토가 군사동맹 성격을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가 정책결정에 참여할 경우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행동이 제약받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 나토의 코소보 전쟁 개입에 대한 러시아의 항의로 99년과 2000년 합동자문회의가 열리지 못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토와 러시아 사이에 이처럼 분명한 입장차가 있기 때문에 양측이 더욱 자주 만나 의견을 교환해야 한다는 것이 유럽 대다수 국가의 생각이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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