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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대신 희망, 술 대신 건강 … ‘재기 슛’쏘는 노숙인 축구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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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3일 오전 서울 손기정공원에서 노숙인 축구단 ‘다시서기 희망FC’와 ‘브릿지 자활축구단’이 첫 친선경기를 했다. [조용철 기자]

“즐겁게 해봅시다, 오늘.”(양만승·39·희망FC)

“좋았어. 그래도 이긴 후 먹는 밥이 맛있겠지? 파이팅!”(김성기·40·희망FC)

13일 오전 10시40분 서울 손기정공원 축구장. 노숙인으로 구성된 축구단 ‘다시 서기 희망FC’와 ‘브릿지 자활축구단’이 첫 대결을 앞두고 기합소리가 우렁차다. 5분 후 경기가 시작됐다. 희망FC가 빠르게 공을 몰더니 3분도 안 돼 첫 골을 터뜨렸다. 브릿지 선수들도 질세라 달리기 시작했다. 15분 후 동점골, 5분 후엔 역전골이 터졌다. 넘어져도 굴러도 그저 신이 난다. 관중석에 모인 50여 명의 동료는 목이 쉴세라 응원을 했다.  

지난달 노숙인의 자활을 돕는 ‘다시 서기 상담보호센터’와 ‘브릿지 상담보호센터’에선 각각 30명, 24명으로 축구단을 꾸렸다. 쉽게 참여할 수 있고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체육프로그램을 통해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서다. 다른 프로그램에는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축구’라고 하니까 호응이 좋았다. 노숙인이 축구단을 조직하고 경기를 벌인 것은 전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희망FC 26번’이 적힌 노란 조끼를 입은 공격수 김성기씨도 이날 땀에 흠뻑 젖었다. 김씨가 노숙을 시작한 건 10여 년 전. 일하던 공장이 부도가 나 실업자가 된 김씨는 거리와 쪽방을 전전했다. “가끔 막노동을 했지만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은 없었어요. 늘 우울하고 불안했죠.” 그러다 가끔 들러 도움을 받던 다시 서기 센터에서 축구 동아리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에는 운동이나 하자는 생각이었지만 점점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연습이 기다려졌다. “인생 자체가 바뀌는 것 같아요. 친구도 많이 생겼고, 다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지요.” 김씨는 축구를 시작하며 희망근로로 번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작은 노점이라도 열고 싶어서다.

파란 조끼를 입은 ‘브릿지’ 공격수 오동윤(36)씨는 축구를 시작하며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게 됐다. 보육원에서 자란 오씨는 중국집에서 조리기술을 익혔다. 하지만 술을 접하면서 사고를 치는 날들이 늘었다. 10년 넘도록 길을 배회했다. 부인도 딸도 그를 떠났다. 오씨가 브릿지 센터를 알게 된 것은 2년 전. 쪽방에서 거주하며 도움이 필요할 때 센터를 드나들다 축구단원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나 사귀어보자는 마음에 시작했다. “별명이 ‘종합병원’이었는데 석 달 만에 몸 상태가 정상이 됐어요.” 몸뿐 아니다. 마음도 건강해졌다. “제 기술로 가게를 열고 싶어요. 딸도 보고 싶어요.”

두 축구단은 앞으로 동네 조기축구회 등과의 친선경기 등을 통해 지역 주민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마련할 계획이다. 주민들과 어울리며 사회 적응 능력을 키우자는 취지다.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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