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육상의 대표적 스프린터 네 명이 31년간 깨지지 않고 있는 100m 한국기록에 대해 대담하던 중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김국영·여호수아·전덕형·임희남. [김우철 기자]
남자 100m 한국기록 보유자 서말구가 1979년 6월 대표 선발전에서 1위로 통과하는 모습. [중앙포토]
그들에게 “뭐가 문제인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전덕형은 “기록 경신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심하다”고 했고, 여호수아는 “지도자가 자주 바뀌어 기술 체득이 안 된다”고 답했다. 임희남은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 수가 너무 적어 기회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김국영도 같은 견해였다. 육상연맹과 지도자 얘기를 꺼내자 웃고 떠들던 넷은 순간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여호수아는 “10초34 기록을 깨도 말할 수 없는 게 있다”고 말했다. 나중에 미운 털이 박힐까 봐 한국 육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기가 곤란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100m 기록이 이토록 안 깨지는 이유는 뭔가.
▶여호수아=10초34만 너무 강조해 그 틀 안에 갇힌 것 같다. 10초34는 일반인도 다 아는 숫자 아닌가. 뛸 때마다 부담감이 심하다. 한국기록이 10초2 대였다면 10초3대 기록은 벌써 나왔을 거다.
▶임희남=대회가 두 달에 한 번 정도 있어 나도 모르게 의식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뛸 기회가 있었다면 진작에 깨지지 않았을까. 아무리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해도 컨디션이 일정할 수는 없다. 미국은 일주일 전에 신청하고 가서 돈 내고 참가한다. 그날 와도 뛸 수 있다. 우리는 대회가 너무 없다. 그나마도 늦은 봄에서 여름 사이 열리는 대회 서너 개가 전부다.
▶김국영=동의한다. 대회가 많으면 몸 상태가 좋을 때 골라서 뛸 수 있을 것이다. 컨디션이 좋아서 또 뛰고 싶어도 다시 한두 달 준비하다 보면 또 몸이 처진다.
-서말구 전 대표팀 총감독은 선수들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전덕형=개인 차를 무시하고 ‘옛날에 이렇게 했는데 그 정도를 못 하니까 정신력이 약하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운동량으로만 밀어붙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 기술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많이 뛰어야 느는 사람이 있다.
▶임=마음속에 목표와 꿈이 있는데 노력하지 않는 선수가 어디 있겠나.
▶김=(맞장구를 치며) 나는 운동 진짜 많이 했다. ‘뛰다가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훈련도 했다.
-다른 문제는 없나.
▶여=(한참 고민하다) 지도자가 자주 안 바뀌었으면 좋겠다. 선수들 기록이 부진하면 바꾸고, 또 바꾸니까 실력이 늘지 않는다. 최소한 2년은 해야 틀이 잡히는데 우리는 너무 자주 바꾸는 것 같다. 축구의 히딩크 감독도 처음부터 잘한 게 아니지 않나. 별명이 오대영이었다. 믿어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 안타깝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대비해 지금 또 외국인 감독을 데려온다고 하는데 늦었다고 생각한다. 코치도 적응하기 힘들고, 우리도 따라가기 힘들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미국·자메이카 코치 3명에게서 배웠는데 길어야 1년이었다. 자메이카 코치는 6개월도 못 채우고 얼마 전 돌아갔다.
▶임=육상연맹 지원도 부족하다. 100m 우사인 볼트(자메이카)나 110m 허들의 류샹(중국)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엄청난 지원과 투자 끝에 나온 선수들이다. 일본만 해도 모든 게 선수 위주로 돌아간다. 우리도 획기적이고 체계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전=나는 1억원 포상금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스트레스가 심하다. 서로 눈치도 보게 되고. 출발선에 서면 ‘1등 하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1억원 때문에 운동한다는 비판도 듣는다. 차라리 그 돈으로 국가대표 단거리에 투자했으면 좋겠다.
한 선수는 인터뷰가 끝나고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냥 좋게 써달라”고 부탁했다. ‘괘씸죄’를 걱정하는 것 같았다.
창원=김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