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논단] 아프간 신체제 수립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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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프가니스탄에서 북부동맹이 수도 카불을 장악함에 따라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대부분을 지배해온 탈레반의 통치지역은 하루아침에 줄어들었다.

탈레반의 퇴조는 미국이 주도하는 알 카에다 등 테러조직 제압작전의 가시적인 성과를 의미한다.반면 북부동맹의 일방적인 수도 입성은 향후 아프가니스탄 정세의 파란 요인이 되고 있다.'탈레반 이후'의 새로운 정치체제 구축을 위한 각국의 외교적인 노력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탈레반이 북부동맹에 대항하지 않고 카불에서 철수한 것은 병사들의 피해를 줄이고,본거지인 아프가니스탄 남부에서 미군과 북부동맹군을 상대로 장기적인 게릴라전을 펼치기 위한 작전 변경으로 보인다. 수도를 버린 탈레반은 이미 정권으로서의 힘을 상실한 반면 북부동맹의 정치적 영향력은 강화됐다.

카불 입성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는 북부동맹이 이후 정권창출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면,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탈레반을 지원해왔고 북부동맹과 대립관계에 있는 파키스탄이 반발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파키스탄과 북부동맹 양측의 협력을 얻어내야 하는 미국의 대 테러작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국 정부는 테러의 배후 주모자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 조직 알 카에다와 연대해 전세계 이슬람과격단체에 '성전(聖戰)'을 호소해온 탈레반의 세력 약화를 환영하는 한편 북부동맹에도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민족을 대표하는'정권 수립을 서둘러야 한다는 게 부시 대통령의 주장이다.

미국은 이번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공격의 목적을 탈레반 및 테러조직의 군사거점 파괴, 그리고 빈 라덴의 신병확보로 좁히고, 탈레반 정권 붕괴에 따른 치안유지와 새로운 정치체제 구축의 역할은 전적으로 유엔에 맡겨놓은 상태다.

하지만 탈레반과 민족.정치적으로 오랜 유대관계를 맺어온 파키스탄은 탈레반 온건파를 신정권에 참여시키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북부동맹과 러시아.이란은 아프가니스탄 신정부에서 탈레반 세력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돼 문제 해결을 지연시키고 있다.

유엔의 아프가니스탄 특사인 라크다르 브라히미는 13일 유엔안보리에서 모든 민족과 지역의 대표로 구성되는 잠정평의회를 설립, 2년 내에 신정권 수립을 목표로 단계적인 정치체제 이행을 진행시킨다는 내용의 구체적인 구상을 처음으로 제안했다. 브라히미 특사가 밝힌 내용은 ▶아프가니스탄 제 정파가 참여하는 회의 소집▶정부구성 방법을 논의할 임시위원회 구성 등이다.

정치의 공백상태가 길어짐에 따라 예상되는 정치.사회혼란을 예방하기 위해 세계 주요국과 아프가니스탄 주변국가, 그리고 북부동맹은 유엔의 5개 구상안을 토대로 정치체제 이행과 향후 치안유지 및 평화 유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합의를 하루빨리 이끌어내야 한다.

역사적인 자위대 파견 등 아프가니스탄 작전에서의 국제적인 공헌을 일본의 외교과제로 설정한 일본 정부는 관계국가와 아프가니스탄 내 각 세력 간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맡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경제신문 11월 15일자 사설>

정리=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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