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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장관 "재경부, 연금에 관여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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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24일 "재경부는 (국민연금 운용의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국민 여론"이라고 말했다. "경제 부처가 국민의 적금통장을 마음대로 갖다 써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MBC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인터뷰에서다.

전날 김 장관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연기금 문제에 대한 자신의 발언 파문과 관련해 "결과적으로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했었다.

그런 김 장관이 다시 소신을 밝히자 여권은 술렁거렸다. 특히 청와대는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김 장관의) 문제 제기 방식을 지적했는데도 또다시 정부 내 공식 채널을 통하지 않고 언론을 통해 입장을 밝힌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노 대통령의 심기가 '섭섭함'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불편해질지 모른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김 장관은 왜 하루 만에 다시 자극적인 발언을 했을까. 주변에선 언론 보도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24일자 일부 신문은 김 장관의 사과를 보도하면서 '백기투항'이라거나, '고개를 숙였다'는 등의 지적도 곁들였다. 그것이 김 장관의 태도를 바꾸게 했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이 측근은 "만일 이번 일로 김 장관이 정책적 소신까지 꺾는 것처럼 비치면 끝장"이라고 했다. "이미 대통령이 불쾌감을 표시하는 등 손해를 본 상황에서 소신마저 버리는 모양새가 되면 상대적으로 김 장관에게 우호적인 국민 여론도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파문을 일으켰던 그 얘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을) 직접 뵙고 말씀드리면 상당히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장관이 홈페이지를 통해 입장을 발표한 게 적절했느냐는 지적은 흔쾌히 받아들이겠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 같은 그의 말엔 국민연금 문제에 대한 자신의 진의가 잘못 전달돼 파문이 커졌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고 한다. 그의 측근은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그 사람이 노 대통령에게 '김 장관이 당(여당).정(정부).청(청와대) 합의사항에 대한 수용을 거부했다'는 식의 일부 잘못된 보도를 부풀려 보고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김 장관 본인도 24일 자신의 외곽조직 성격인 '한반도재단' 관계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당.정.청 합의에 대한 당의 브리핑이 잘못됐다"며 불만을 나타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노 대통령과 김 장관은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만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노 대통령 내외에게 '사랑의 열매'를 전달하는 자리다. 김 장관은 다른 일정을 이유로 불참하려다 참석하기로 했다. 여권 관계자는 "두 사람이 만나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상황이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김 장관의 거취에 변동이 생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김 장관에 대한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 장관 측도 "장관직 사퇴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양측엔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는 상태여서 그것이 언제 어떤 형태로 다시 불거질지 모른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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