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시민 여러분, 운동장서 나와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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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문화시민 여러분, 잔디밭에서 나와주세요. 왜 이렇게 안 나오십니까."

한국과 크로아티아의 광주 월드컵경기장 개장경기가 벌어진 지난 13일. 양팀이 1-1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 뒤 선수들이 퇴장하자 관중석에 앉아있던 관중이 잔디 그라운드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과 1~2분 사이에 경기장 잔디 위에는 수백명의 관중이 자리를 잡고 앉는가 하면 삼삼오오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에 장내 아나운서는 연신 나와달라는 방송을 내보냈다. 몇 차례 방송에도 그라운드로 들어간 관중이 요지부동이자 아나운서의 멘트는 통사정에 가까웠다.

"왜 이러십니까. 문화시민들이 왜 이러십니까. 빨리 나와주세요."

10분 정도 방송이 계속되자 그제야 '볼일'을 다 봤다는 듯 조금씩 그라운드에서 빠져나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경기장 관리직원들이 들어와 관중을 몰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내년 월드컵 개막전 장소인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해 이날까지 모두 8개의 월드컵경기장이 문을 열었다. 지난 4월 울산 문수경기장부터 연이은 개장이었지만 경기가 끝난 뒤 그라운드에 인파가 쏟아져 들어간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날 광주 월드컵경기장 개장경기에는 전주와 서울 개장식을 찾았던 많은 외신기자들이 자리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문화시민'의 모습이 '훌리건'이 아니었기를 바랄 뿐이다.

광주=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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