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이너리티의 소리] 유아교육·보육 왜 통합 못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내년부터 전국의 저소득층 어린이 13만5천명에게 유치원.어린이집 학비가 무상으로 지원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약 1천4백억원을 확보해놓고 있다.

교육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막혀 있었던 저소득층의 부모들에게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늘에서 움츠려 있던 어린이들이 이제 '작은 국민'으로서 떳떳하게 교육과 보육을 받을 수 있게 돼 매우 기쁘다.

그러나 선진 유아복지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우리의 유아복지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들의 유아복지정책의 핵심은 '원하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질 높은 교육과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어렵게 마련한 유아교육기관 학비 무상지원금으로 어린이들에게 질 높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아가 유아교육 선진국가가 되려면 몇 가지 제도적인 뒷받침이 병행돼야 한다.

첫째, 교육과 보육은 통합돼야 한다. 현재 유치원 교육은 교육인적자원부가, 어린이집 보육은 보건복지부가 맡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이 땅의 어린이들은 정부와 관련 이익집단들의 볼모가 돼 그들간의 끝없는 정책대결과 투쟁에 휘말려 희생돼 왔다.

정부와 유아교육기관 종사자들은 이제 어린이를 국가인적자원의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인식하고 교육복지라는 일원화된 체제 속에서 교육해야 한다. 교육과 보육을 통합시킨 법으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유아교육법'을 하루빨리 입법화해야 한다.

둘째, 유아교육기관을 평가해야 한다. 현재 우리의 유아교육은 지역별.설립유형별.기관별로 질적 차이가 매우 크다. 이에 따른 교육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반드시 유아교육기관의 평가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유아교육의 질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이에 근거해 정부가 행정.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 어렵게 마련된 국가 재정이 서로 '퍼주기 퍼먹기'식이 돼서는 절대로 안된다. 평가체제는 교육기관간의 선의의 경쟁을 유발해 교육의 질도 높일 수 있다.

셋째, 유아교사 양성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교사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일정한 교육훈련과정과 자격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유아교사가 되는 길이 참으로 다양하다. 같은 어린이를 가르치면서도 교육훈련기관이 다르고 교육기간도 다르다.

교사자격도 다르고 소관부처도 다르다. 교사가 되는 통로가 다양할수록 교육의 질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질보다는 양만 생각해온 현행 교사양성 시스템을 과감히 통폐합해야 질 높은 유아교사를 양성할 수 있다.

넷째, 유아교사를 제대로 대우해야 한다. 현재 유아교육기관에 종사하는 교사 수는 9만명 정도다. 유아교사는 다른 교육기관의 종사자보다 육체적.정신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하지만 상당수가 패스트푸드점의 아르바이트 학생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

사립 유아교육기관이 영세한 때문이라고만 볼 수 없다. 유아교사를 교사로 생각지 않는 것은 정부도 마찬가지다.교육인적자원부가 수년간 고심 끝에 만들어 발표한 '교직발전종합방안'에도 유아교사에 대해서는 단 한줄도 언급돼 있지 않다.

유아교사는 말 그대로 내팽개쳐져 있다. 유아교사들이 어린이들을 신바람나게 가르칠 수 있도록 정부가 이들의 복지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해줘야 한다.

백형찬 <청강문화산업대 교수.유아교육>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