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하병준] 한무제(漢武帝)와 남북관계(Part 1/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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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역대로 북방 유목민족의 숱한 침입에 시달려왔다. 500년 가까웠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통일하고 중국에 제국(帝國)의 역사를 선보인 진(秦)의 시황제(始皇帝) 영정(嬴政)은 엄청난 자금과 인력을 동원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았다. 천하를 통일하였으니 북방 흉노족만 막으면 만세(萬世) 동안 제국이 영속(永續)할 것이라 했던 진시황의 희망과는 달리 외부 침략이 아닌 자신의 아들에 의해 왕국은 급사했다.

뿐만 아니라 뒤를 이은 제국인 한(漢)의 개국황제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항우(項羽)를 제압하고 천하를 평정한 객기(客氣)로 흉노를 정벌하겠다고 나섰다가 큰 수모를 겪었다. 바로 평성(平城, 오늘날 산동성 대동大同)의 백등산(白登山)에 갇혀 굶어 죽기 직전에 묵돈 선우(單于)의 첩에게 뇌물을 바치고서야 생명을 부지하게 된 것이다. 이후 한나라는 인당수에 심청이를 바치듯이 흉노에 매년 조공과 공주를 보내주고서 겨우 평화를 얻어냈다. 하지만 안정적인 식량공급이 되지 않는 몽고고원의 특수성 때문에 흉노는 먹을 것이 필요할 때면 수시로 만리장성 이남을 침탈하였고 때문에 중화사상을 확립한 한나라 입장에서는 굴욕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한나라 5대 황제로 등극한 한무제(漢武帝)는 기원전 133년 드디어 흉노에 대한 무력 정벌을 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친다. 20살 패기만만 했던 한무제의 선전포고에 한나라 조정은 주화파(主和派)와 주전파(主戰派)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주전파인 이회(李懷)는 한고조 이래 60년 동안 매년 공물을 바치고 때마다 공주를 비롯해 여자들을 바쳤지만 흉노는 걸핏하면 침략을 해왔기 때문에 이제는 대한(大漢)의 군사력으로 본때를 보여줘야 더 이상 도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반면 주화파인 한안국(韓安國)은 흉노는 유목민족이라 기동성이 좋기 때문에 핵심 사령부를 공격하기 어렵고 지역이 황폐해 정복한다고 해서 경제적 이익이 없고 설령 정벌을 하러 간다고 해도 몽고고원까지 거리가 멀어 보급선이 길어지므로 안정적인 전투 자체가 힘들어져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면서 화친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이라고 하였다.

나름대로 모두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한나라 조정 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젊은 한무제는 선대인 문제(文帝), 경제(景帝)의 문경지치(文景之治)를 거치며 축적된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흉노 정벌을 결정했다.

초기에는 이광(李廣), 위청(衛靑), 곽거병(霍去病) 등 명장의 활약으로 그 동안 괴롭힘을 당한데 대한 충분한 앙갚음을 하였기 때문에 한무제는 매우 흡족해했다. 하지만 ‘문경지치’를 통해 비축했던 경제력이 잦은 대외전쟁(한무제 재위 54년 가운데 48년 이상)으로 모두 바닥이 나면서 향후 서한(西漢) 왕조는 다시 흉노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이 되어버렸다.

서한의 한무제와 흉노의 관계는 작금의 대한민국과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와 상당히 유사하다. 흉노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하던 한나라는 대한민국에, 배가 고프면 한나라를 침략한 후 먹을 것을 더 달라고 떼를 쓰는 흉노는 북한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고 그 배후로 북한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면서 일부에서는 보복공격을 해서라도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현 상황이 총선 시기와 맞물려서인지는 몰라도 한무제 당시 이회 같은 주전파에 가까운 의견이 언론 등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상당히 우려가 된다.

규모가 크든 작든 전쟁은 국가 대사이자 백성의 생사와 사직의 존망이 걸려 있기 때문에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兵者,國之大事,死生之地,存亡之道,不可不察也)

청(淸)나라 때 게훤(揭暄)이 쓴 <병경백편(兵經百篇)∙법편(法篇)∙리(利)>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兵之動也,必度益國家,濟蒼生,重威能。
군대를 움직일 때는 반드시 국가 이익을 고려하고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살펴야 하며 충분히 그 위엄을 떨칠 수 있는지 봐야 한다.

苟得不償失即非善利者矣。
“만약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면 이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다.”

보복 공격일 뿐이라고 강변할 수 있지만 군사행동을 할 때 국가 이익은 물론이요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살펴보고 그 위엄을 떨칠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군사행동에 북한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벼랑 끝에 몰린 북한이 ‘내가 한 대 때렸으니까 맞아주지’하고 눈감을 리 만무하다. 이번 사태 역시 지난 2월 중순 있었던 ‘대청해전’에 대한 보복 공격이라는 설이 지지를 얻고 있는 지금 우리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보복을 하면 북한의 추가 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게다가 북한의 소행이라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니다. 따라서 어정쩡한 가정과 증거를 가지고 격양된 감정에 기대 보복을 하게 될 경우 전면전이 전개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한무제의 한제국과 흉노의 전쟁처럼.

문제는 현재 겉으로 보이는 상황은 한제국과 흉노와의 관계와 유사한 듯 하지만 실질 적인 면에서 차이가 너무나 크다. 일단 미국의 지원이 없을 경우 우리 군사력만으로 북한을 제압할 수도 없을뿐더러 주변 지원세력이 한나라의 사전 공작에 의해 끊기면서 고립되었던 흉노와는 달리 북한은 중국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는 점에서 사태를 단순하게 바라볼 수만 없다. 중국이 중립을 그대로 지키고 있거나 우리 쪽에 붙을 것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自欺欺人)이나 다름없는 허황된 기대일 뿐이다. 아마도 보복성 국지전이든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전면전이 전개되어 중국이 음으로 양으로 군사 지원을 하게 되면 국제전으로의 확산을 바라지 않을 서방 강대국들이 전적으로 우리측에 서 주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도 없다.

오히려 현 시점에서 북한은 우리 측의 보복성 공격을 더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강경파가 북한 군부를 장악했으며 와병 중인 김정일도 군부에 대한 통제력을 크게 상실했다고 분석하고 있다면 우리의 섣부른 대응은 한민족 탄생 이후 최악의 참극을 불러올 수도 있다.

하병준 중국어 통번역, 강의 프리랜서 bjha7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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