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중국 '창하오 대첩' 열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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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언제나 이기던 이창호9단이 모처럼 지는 바람에 한.중 바둑계가 떠들썩하다. 지난 주 삼성화재배 준결승 3번기에서 이창호9단이 중국의 창하오(常昊.사진)9단에게 1대2로 패한 뒤 중국 바둑계는 온통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중국 매스컴은 "세계 바둑계의 1인자 이창호9단이 번기(番琪)에서 외국 기사에게 패한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강조한 뒤 이 승리가 중국 바둑사를 새로 쓰게 할 것이라고 썼다.

중국의 신화통신은 인터넷에 올린 단평에서 "창하오9단이 이창호의 무적 신화를 깨뜨렸다. 이 승리로 중국의 젊은 기사들은 '공한증'을 떨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중국바둑협회 주석인 천쭈더(陳祖德)9단도 "창하오가 이창호를 꺾은 것은 세계대회 우승보다 더 값지다"고 말했다. 그는 "이 승리로 중국 기사들의 사기가 크게 고무될 것이고 자신감도 강해질 것이다"고 덧붙였다.

중국에서 이창호9단의 별명은 '석불(石佛)'이다.'돌부처'의 중국식 이름인 셈인데 중국 인터넷에 오른 바둑평론들은 "중국 7소룡(小龍)의 우두머리인 창하오9단이 무적의 석불을 쓰러뜨렸다.

이제 조훈현이란 대산(大山)을 마저 넘어 중국 역사상 최연소 세계챔피언이 될 것이 틀림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창하오9단도 전과 달리 자신감이 넘치는 말을 토해내고 있다.

그는 "나는 이창호9단에게 많이 졌기 때문에 이번엔 반드시 이겨야 했다"고 전제한 뒤 결승전의 상대인 조훈현9단에 대해서도 "조9단은 상대하기 힘든 기사다. 지금까지의 전적에서도 내가 한판 더 졌으며(3승4패) 기풍도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나는 조9단보다 젊다는 점에서 우세하다고 생각한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이창호9단은 이 대회 전까지 14승2패로 창하오를 압도했다. 그러나 6일 유성 삼성화재연수원에서 벌어진 준결승 1국에서 끝내기 실수로 반집을 졌다.

'신산(神算)'이라 불리는 이9단이 끝내기 실수로 반집을 진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기에 관전하던 프로들은 무척 놀란 모습이었다.

2국은 이9단이 평소의 페이스로 역전승. 3국이 벌어진 8일, 이 대국을 생중계한 인터넷 바둑 사이트들은 몰려든 바둑팬들 때문에 접속이 불가능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오로'와 '사이버기원''타이젬' 등 3개 사이트는 동시접속자 수가 1만명을 넘어서 바둑 중계 사상 최대인원을 기록했다.

3국은 이9단의 역전패. 국내에선 이 바둑에서 등장한 이9단의 판단착오, 그리고 1국에서의 불가사의한 끝내기 실수 등 때문에 "이창호9단이 이상하다"는 우려가 은근히 증폭되고 있다.

이9단은 말이 없다. 승부세계에서 어쩌다 한판 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여전히 무심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조훈현9단 대 창하오9단의 결승전은 12월 11~14일 열린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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