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기 맞은 가수 배호… 시대의 상실감 달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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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금도 기억난다. 좁은 안방의 한켠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던 독수리표 전축. 그 커다란 마호가니 케이스의 진공관식 전축은, 아버지가 가족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가지고 있던 유일한 값나가는 물건이었다. 생각난다.

낡은 앨범 표지의 배호는 그 전축 옆에서 언제나 근사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대포를 한잔 걸치신 밤이면 아버지가 나즈막히 흥얼거리던 노래,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한 잎'으로 끝나는 '마지막 잎새'도 아련하다.

어쩌면, 1960년대 정치적 권위주의와 경제적 고도발전의 어지러운 시대에서 인기를 누리다 스물아홉살의 나이로 요절한 멋진 저음의 가수 배호는, 그 시대 젊은 아버지들이 가졌던 상실감과 비애의 상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배호. 본명 배만금(裵萬金). 지난 7일로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되는 그는 1942년 4월 24일,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부친 배국민씨와 모친 김금순씨 사이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그가 열한살때 부친이 세상을 떠났고, 모친과 여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라는 무게와 가난이 유산으로 남았다. 고등학교를 도중에 그만두고 서울의 밤거리를 떠돌던 그의 첫 직업은 카바레 청소원이었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새벽의 카바레에서 혼자 두드리며 익힌 드럼 솜씨를 밑거름 삼아 그는 외삼촌인 김광빈씨가 이끌던 김광빈악단의 드럼 연주자로 가요계에 발을 디뎠다.

1964년 김광빈 작곡의 '두메산골'로 가수로 데뷔했지만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의 운명을 바꾼 노래는 그가 스물네살때인 66년 발표한 '돌아가는 삼각지'. 그를 일약 인기 정상에 올린 이 노래는 그의 최대 히트곡이 됐다.

음악 매니어인 소설가 송영씨의 묘사처럼 '일절 가성이 섞이지 않은 두터운 남성적 저음과 영혼에서 쥐어짠 듯한 목울림의 창법'으로 그는 가요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안개낀 장충단 공원''누가 울어''안개 속에 가버린 사랑'등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하지만 오랜 가난 속에 얻은 지병인 신장병이 점점 악화돼 회복불능 상태에 이르렀다. 71년 초겨울, 서울 종로의 한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마지막 노래 '마지막 잎새'를 취입했고, 그 며칠 뒤인 71년 11월 7일 눈을 감았다. 미혼이었고 물론 세상에 남긴 혈육도 없었다.

배호의 일생을 더듬다보면 필연적으로 고 김현식을 생각하게 된다. 그 남성적인 목소리와 애조띤 노래들, 인터뷰조차 꺼려하던 내성적인 성격, 젊어서 죽어 영원히 신화가 된 애닯은 운명, 그리고 그들을 잊지 못하는 팬들의 사랑이 그렇다.

'아니,배호를 모르다니!'라는 장년층의 한탄은 시간이 지나면 '김현식을 몰라□'라는 지금 젊은층의 놀라움으로 대체될 것이다. 씁쓸하지만 그것이 대중가요의 운명이다. 그래도 그들과 그들의 노래를 추억하고 아끼는 이들은 여전히 있을 것이고, 그 속에서 그들은 불멸할 것이다.

배호에 대한 많은 자료와 이야기들은 공식 홈페이지(http://www.baeho.com)와 추모사업회(회장 배상태.02-465-9988)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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