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SOC사업이 '돈 먹는 하마'는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한 한국형 뉴딜 정책을 발표하면서 사회간접자본(SOC)의 건설에 민자를 유치하고 연기금을 동원하겠다는 정책수단이 많은 논란을 빚고 있다. 정부는 적자재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뉴딜 정책에 연기금.공기업.사모펀드.외국자본 등 동원 가능한 재원을 모두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대해 정부 내부에서도 국민연금을 경기 부양을 위한 건설사업에 투입하는 것은 "콩 볶아먹다가 가마솥 깨뜨릴 판"이라며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연기금의 자산운용에 있어서 투기적인 주식투자는 위험하다거나, 건설산업은 경기에 민감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경험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언론에선 그동안 민자로 건설된 SOC 시설이 정부의 수익보장 약속으로 큰 재정부담이 되고 있다면서 일부 유료 고속도로는 통행량 예측이 과도하게 부풀려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오해가 있다.

첫째, SOC와 관련된 주식투자는 항상 투기적인가. 사업성이 좋으면 주가는 오르게 마련이다. 문제는 경기가 침체돼 현금 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지 주식투자를 한다고 해서 모두 손해보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SOC 시설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인프라 펀드는 상당히 고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계 펀드가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것은 당연히 여기면서 국내 펀드의 손발을 묶어놓는 것은 과잉규제에 다름아니다. 수익성을 철저히 따져 사업성이 양호한 주식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면 당해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공히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민자로 건설된 SOC 시설은 돈 먹는 하마인가. 본래 민자사업은 정부 또는 지자체가 건설해야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많은 예산을 투입할 수 없으므로 민간투자를 유치하기로 한 것이다. 고속도로의 통행량 예측 등 현금 흐름 예상에 문제가 있는 것은 특혜 시비 등을 우려해 효과적인 수익사업을 불허한 데 있다. 외국에서는 재정부담이 우려될 경우에는 고속도로 사업자에게 인접지역의 관광단지.산업단지 건설권까지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민자사업의 시행은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속도로.교량 등 수입이 뻔한 교통시설 건설에 주로 이용되지만, 일본에서는 사설 철도, 필리핀에서는 발전소의 건설 및 운영을 거의 전적으로 민간자본에 의존하고 있다. 민자사업이 적자를 보는 것이 아님은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서로 경쟁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이동통신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셋째, SOC 시설은 정부가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해야만 하는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려면 SOC 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재정형편이 여의치 못하다면 민간투자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작은 정부'에서 공기업을 민영화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부가 SOC 서비스를 충분하고 저렴하게 제공하려면 세금을 대폭 늘려야 하지만 그리 할 수 없으므로 그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비용의 일부를 부담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해외로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은 민자사업으로 건설된 신공항고속도로의 통행료를 지급해야 한다. 만일 통행료를 낮출 경우에는 해외여행을 하지 않는 대다수의 국민이 낸 세금으로 그 건설 및 유지비를 충당해야 할 것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사람이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에 가깝다.

정부의 임무는 통행료를 무조건 싸게 하는 게 아니라 큰돈 들이지 않아도 되는 대체적인 접근수단을 함께 제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선진국의 사설철도 요금, 고속도로 통행료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비싸게 책정돼 있다.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아예 민간부문에 SOC 시설의 설계에서 건설.자금조달.관리운영까지 모두 맡기고 정부는 그 이용료를 내는 민간주도방식(PFI)을 채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훤일 경희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