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폭탄주와 위스키 최다소비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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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국제뉴스 가운데 하나가 한국인은 위스키를 잘 마시며 폭탄주 문화가 양주 소비를 계속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주류 메이커들이 한국 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상품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는 뉴스까지 접하게 되면 우리들의 음주문화가 봉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영국의 BBC방송이 스코틀랜드 위스키협회의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한국이 수입한 위스키 양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40%(6백40만병)나 늘어났다. 전세계 평균 증가율보다 세배 이상 높은 것이다. 국내 주류업계의 통계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올해 위스키(수입양주 포함)의 매출이 2년 사이에 50% 가까이 늘어난 1조2천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며, 특히 '밸런타인' 등 고급 위스키의 증가세가 두드러져 올 판매액이 1천8백억원에 이르렀다. 전체 위스키 소비량을 보면 올해에도 세계 제5위의 위스키 수입국이라는 불명예를 씻을 길이 없다.

보통 우리의 음주형태는 불황기 때 소주.맥주의 소비가 늘어나고 위스키는 줄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경제 침체에도 아랑곳없이 룸살롱 등에서 고급양주의 소비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크고 작은 저녁식사 모임에도 마시든 안 마시든 위스키가 나와야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았다는 말을 듣는다. 오죽하면 기업경영이 '술을 통한 경영'(MBA=Management by Alcohol)이라고 하겠는가.

한병에 4백달러 이상 하는 고급양주를 폭탄주로 만들어 마시거나 거의 절반을 버리기도 하는 사치스러운 음주벽이 우리나라를 '위스키 최다 소비국'으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폭탄주를 군사문화의 잔재라고 비판하면서도 술자리를 마련했다 하면 어김없이 폭탄주를 돌려야 하는 우리의 음주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이제 연말이 다가올수록 수많은 망년회에서 또 엄청난 폭탄주가 돌고 우리들의 건강을 해치게 될 것이다. 소주라도 마시면서 재미있게 식사자리를 이끌어가는 화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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