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평당원 결행 이후] 여당 CEO 내놨지만 여전히 최대주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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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민주당 총재를 사퇴하고 평당원의 신분이 됐다. 그는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金대통령은 9일 민주당 한광옥(韓光玉)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도 이같은 결심을 거듭 확인했다. 한 참모는 "명예총재직도 갖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민주당과 거리를 둘 생각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대표의 주례보고도 없앴다.8일 韓대표를 만나서도 당 운영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었다고 심재권(沈載權)전 총재비서실장은 전했다. 청와대 정무비서실 관계자는 "일상적인 당무에 관해 일절 간섭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권당 총재직을 물러난 이상 어느 정도의 권한축소는 불가피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에 대한 金대통령의 영향력은 줄지 않았다는 것이 당 안팎의 한결같은 평가다. 민주당은 그 전신인 국민회의부터 金대통령이 만들고 키워온 정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내 최대세력인 동교동계는 1987년 평민당 이래 그의 친위조직이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민주당 소속의원 1백18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63명의 현역의원이 가입한 중도개혁포럼도 金대통령의 직할조직이라는 평가다.

지분으로 따져도 金대통령은 아직 명실상부한 최대 주주라는 얘기다.총재직 사퇴는 기업에 비유하면 최고경영자(CEO)자리를 물러났다는 의미일 뿐이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당의 한 중진의원은 "민주당에서 金대통령의 지분은 70% 이상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운영을 좌우할 실력자들도 金대통령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있다. 우선 한광옥 대표는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으로 金대통령의 배려에 의해 당 대표에 취임했다. 중도개혁포럼 회장인 정균환(鄭均桓)총재특보단장도 金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있는 인사다.

여기에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權魯甲)전 고문이 가세할 것으로 보인다. 權전고문은 일단 정치적 생존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퇴진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쇄신파도 "더 이상 인적쇄신은 거론치 않기로 했다"고 입장을 정리해 그의 숨통을 틔워줬다. 權전고문은 김옥두(金玉斗)의원 등과 함께 金대통령의 의중을 정치권을 상대로 집행하는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그가 '마포사무실 폐쇄'를 끝내 거부한 것도 자칫 '정치활동 중단'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 해석이 우세하다.

아직 金대통령을 대체할 실력자도 찾기 어렵다. 민주당에는 차기 대선후보 자리를 노리는 예비주자는 여러명 있지만 마땅한 차기 총재감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金대통령의 공백은 크다. 동교동 신파로 분류되면서 동교동 구파와 거리를 두는 한화갑(韓和甲)고문을 비롯한 예비주자들도 대부분 '金대통령의 업적 계승'을 외치고 있다.

金대통령은 1987년과 92년의 대선패배 당시 당 총재직을 사퇴하거나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일선에서 한발 물러났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동교동계와 권노갑.한화갑씨 등을 통해 자신의 의중을 국회의원 공천 등 당의 중요한 결정에 반영해왔다. "현재로선 金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중요 사안들을 뜻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당 사정을 아는 사람들의 설명이다.

이같은 金대통령의 영향력도 전당대회가 열려 새총재 또는 차기 후보가 선출되면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이다. 권력의 속성상 급속한 권력이동이 이뤄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인 것이다. 이는 92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金泳三)당시 대통령의 신한국당 총재직 퇴임과 이회창(李會昌)신임총재의 부상 과정에서도 드러난 적이 있다.

하지만 민주당과 동교동계에 미치는 金대통령의 권위가 워낙 절대적이어서 金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다른 전직 대통령과는 다를 것이란 관측도 만만치 않다. 그만큼 '평당원 DJ'는 막강하다는 지적이다.

김진국.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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