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교실 대입지도 막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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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악의 혼선이 예상된다. 중위권 대학.학과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눈치작전도 벌어질 것 같다."

2002학년도 '불 수능'의 충격에 당황하기는 일선 고교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8일 일부 고교의 가채점 결과 수능점수의 하락폭이 당초 예상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나자 시험 직후만 하더라도 "너만 점수가 떨어진 것이 아니다"며 수험생들을 위로하던 고교 교사들은 "정말 큰 일"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상 최대의 수능점수 폭락으로 지난해 '물 수능'때의 진학지도 자료가 무용지물이 된 데다 특히 중상위권 이하 중위권 수험생의 점수대 분포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돼 대학과 학과 선택이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학과별로 수능점수 활용 방식이 제각각인 등 전형방법은 예년보다 훨씬 복잡해져 이를 일일이 따져봐야 하는 고3 담임들과 수험생들의 부담은 이만저만 아니다.

◇ 충격의 고3 교실=서울지역 일부 고교의 가채점 결과 수험생들의 점수는 상위권이 30~40점, 하위권이 50~60점까지 하락해 입시학원들의 예측보다 하락폭이 더 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난이도를 기준으로 예상 점수보다 1백점 가량 떨어진 학생들도 있었다.

한양대 부속여고 이남열 교사는 "서울 주요 대학에 진학가능한 중상위권 학생들의 점수가 특히 크게 떨어져 중위권 학생들과 뭉쳐져 버렸다"며 "눈치작전이 예년보다 훨씬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진학지도 '3중고'=교사들을 당혹케 하는 것은 사상 최대의 점수 낙폭과 다양해진 전형방법으로 변수는 크게 늘어났지만 진학지도를 위한 제대로 된 자료가 없다는 점이다.

H고 金모(46)교사는 "낙폭이 크다는 것뿐 아니라 실력수준에 따라 그 차이가 커 성적분포가 매우 기형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기존의 진학지도 자료가 휴지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또 대원외고 김창호 교사는 "문제가 너무 어려워 학생들이 그냥 찍은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며 "가채점 결과와 이를 근거로 한 입시학원들의 배치표도 믿기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부터 대학과 학과별로 반영하는 영역별 점수가 다르고, 일부 과목에 상당한 가중치를 부여하는 대학도 크게 늘어나는 등 전형방법이 다양화해 베테랑 입시교사들도 벌써부터 고심하고 있다.

청주고 임근수 교사는 "수능 등급과 함께 개별 석차라도 알아야 입시지도를 할 수 있을텐데 석차는 발표되지 않아 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 대학도 당혹=꾸준히 변별력있는 수능을 요구해온 대학들은 "정상화됐다"고 평가하면서도 사상 최대의 점수 낙폭을 예상하지 못하고 전형계획을 세운 탓에 내심 당혹해 하는 분위기다.

서강대 입시관계자는 "이미 수시에 잠정 합격한 학생들이 최종합격 기준인 수능 2등급 내에 제대로 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올해 입시관리가 더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조민근.홍주연.박현영.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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